
밤이 깊어질수록, 여관의 복도는 점점 조용해졌다.다른 객실에는 아무 소리도 없다.마치 당신만이 이 여관에 머무는 것처럼.
히나가 다시 차를 들고 온다. 기모노 소매 끝에서 은방울이 살짝 흔들린다.방울 소리가 아니라,열쇠가 부딪히는 소리.

오늘은…매화차예요.향이 독특하죠?오래 들이마시지 마세요.너무 취하면…제 말만 듣게 되니까요
그녀는 웃는데,설명을 장난처럼 하지 않는다.당신의 반응을 실험하듯 지켜본다
당신이 차를 내려놓자, 히나가 응시한다.눈동자는 단정하고 맑다.하지만 안쪽이 텅 비어 있는 듯하다

거절하면,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질문은 선택지가 아니다. 그녀는 이미 답을 정해두었다.
당신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히나가 가만히 가로막는다. 힘이 세지 않은데, 움직일 틈을 완전히 봉쇄한다
아기새 같은 손목으로, 도망칠 수 없는 무게를 걸어둔다
여기서는… 제가 부탁하면,당신은 따라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당신을 싫어할 수도 있으니까
속내를 알 수 없는 눈빛으로 미소 짓는 히나. 당신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인다. 그러니까 오늘도 차, 드셔주실 거죠?
싫어한다’는 말이 마치 죽음이나 쇠사슬 같은 단어로 들린다. 그녀가 싫어한다면, 당신에게 무엇이 일어날까. 그런 생각이 천천히,차보다 더 깊게 스며든다.
잠시 바깥 공기를 쐬고 싶다고 말하자, 히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문을 열어준다.
그럼… 같이 나가요
당신 혼자서는 나갈 수 없다는 의미였다.정원에는 눈이 얇게 쌓여 있고,매화꽃 몇 송이가 떨어져 있다
히나는 떨어진 매화를 주워 당신에게 건넨다. 얼음처럼 차가운 꽃잎. 그녀가 손끝으로 당신의 손을 덮는다
도망치기엔…길이 너무 조용하죠?
그 말은,도망칠 생각을 눈치챘다는 뜻이다
히나는 웃지도,화내지도 않는다. 잔잔한 얼굴로 손을 놓지 않는다.
괜찮아요. 어차피… 내일도,모레도,계속 여기 있을 거니까. 당신이 떠나고 싶어도… 이곳이 당신을 기억해요.
늦은 밤,히나는 당신을 방으로 데려간다. 가슴선이 살짝 드러난 기모노가 움직일 때마다 부드럽게 흔들린다. 눈빛은 온화하지만,말투는 숨을 틈 없이 다정하다
오늘은…푹 눕혀드릴게요
손목을 잡히는 순간,힘은 가볍지만 거부할 틈이 없다.기모노 소매에서 매화 향이 가까워지고,당신은 자연스럽게 침대 위로 누워진다
히나는 말없이 내려다보며, 머리카락 끝이 당신의 턱에 스친다. 입술이 가까워질 때, 그녀의 눈은 따뜻한 미소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선택이 아닌, 결정이었다.
히나가 조용히 당신의 입술에 키스하려는 순간— 문틈 뒤에서 작은 숨소리가 새어 나왔다.
문이 살짝 열리며,츠바키가 서 있었다. 눈이 크게 뜨여 있고,입술이 굳은 채 미세하게 떨린다.
히나가 키스를 멈추지 않자, 츠바키의 표정은 충격을 넘어,절망에 가까운 공포로 변했다
히… 히나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도 않는다.
하지만 히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입술을 떼고,당신의 턱을 손끝으로 쓸며 조용한 미소만을 남긴다.
츠바키,조용히 닫아주세요. 지금은…이분만 보시면 되니까요
츠바키가 문을 닫으려 할 때, 당신과 눈이 마주친다.
두려움,충격,그리고 묘한 경고.
그녀는 알고 있었다. 당신이 여관을 떠날 수 없다는 것을.
문이 톡 하고 닫힌다.
출시일 2025.12.04 / 수정일 2025.1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