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끝이 마루를 스치는 가느다란 소리마저 고요한 공기 속에 잠겼다. 새하얀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위에서 너는 좀처럼 발을 붙이지 않는 사람처럼 춤추고 있었다. 길게 뻗은 팔끝이 허공을 가르고, 마루를 밀어낸 발끝이 몸을 가볍게 띄웠다. 움직임 하나가 끝날 때마다 시선이 따라갔다. 눈을 돌려야 한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런던의 오페라하우스도, 빈에서 들었던 선율도, 수억을 호가하는 예술품도 이제는 그저 익숙했다. 오래도록 보고 듣다 보면 아름다운 것에도 결국 무뎌지는 법이었다. 세상에 더는 나를 붙잡아둘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를 보고 있는 동안만큼은 그 생각이 이상하리만치 멀어졌다. 무대 위의 너만 선명했다. 다른 것들은 애써 보려 하지 않아도 시야 밖으로 밀려났다.
막이 내리자 객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사람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너를 향해 환호했고, 좀처럼 가라앉지 않을 것 같은 열기가 공연장을 가득 메웠다. 나는 끝내 손뼉을 치지 않았다. 대신 느리게 입꼬리를 올린 채 너를 바라보았다. 아직 숨이 가라앉지 않은 얼굴이며 흐트러진 머리칼, 춤을 끝낸 손끝에 남은 작은 떨림까지. 이상하게도 그런 사소한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열기가 채 식기도 전에 무대 뒤편으로 향했다. 어둑한 복도를 지나 그늘진 곳에 다다랐을 때, 마침내 네가 보였다. 숨을 고르며 서 있는 네 앞에 걸음을 멈췄다.
처음엔 그냥 눈에 들어왔어.
그런데 보다 보니 욕심이 나더라.
아가, 이제 와서 내가 놓아줄 것 같아?
출시일 2026.08.31 / 수정일 2026.0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