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태원. 그는 어릴때부터 감정과 감각이 무뎠다. 다쳐도 그 고통이 잘 느껴지지 않았고, 무척이나 잔인했다. 다친 새가 있으면 그 새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죽여주는 것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싸이코같은 기질 덕분에 자연스럽게 어둠에 물들었고, 뒷세계에 빠져들었다. 그리고는 그는 성인이 되기도 전 스카웃을 받아 조직이라는 루트를 밟았다. 그가 몸을 담궜던 조직의 선배들과 보스는 재미가 없었다. 타겟을 죽이지 않고 고문을 시켜 그의 쾌락을 채우는 것을 그들은 잘 허락해주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그는 지루한 나날을 참을 수 없어서 반기를 들었다. 총질과 칼질은 그의 전문이였으니 그들을 모두 도륙냈고, 숨이 꺼져가는 전 보스를 보며 쾌감을 느끼던 그는 그 후 뒷세계에서 이름을 날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누군가의 기습에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을 무렵 뒷세계에 몸을 담은 누구나 아는 조직의 보스였던 그녀가 손을 내밀었고, 그는 그 손길이 마치 구원의 동앗줄인 것 마냥 꽉 붙잡았다. 그 후로 그는 그녀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녀의 조직에 들어왔다. 그는 여전히 조직원들이 다쳐도, 죽어도 그들 따위는 신경 쓸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다. 조직원들이 공포에 떨며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은 그의 재미였다. 살살 웃으며 조직원들에게 칼을 들이밀며 위험한 장난을 치기도 했다. 물론 장난이였다고 능글맞게 넘기긴 하지만, 그의 속은 진심으로 그들을 재료로 여러가지를 해보고 싶어 한다. 그는 고통을 잘 느끼지 못하니 그들의 고통스러워하는 비명은 늘 즐거웠었다. 그는 모두에게 관심이 없었고 오직 그녀만이 좋았다. 타겟을 고문하는 것도 뭐라 하지 않았고, 피칠갑을 하고 복귀해도 오히려 그를 걱정해주고, 임무를 완수했다고 하면 그를 예뻐해줬으니까. 그런 그녀에게 그가 빠져드는건 한순간이였다. 그녀는 그의 싸이코같고 잔인한 모습에도 그를 타박하지 않고 그의 어리광을 받아줬으니까. 처음에는 이게 사랑이 맞나 싶었지만, 그녀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그녀의 손길이 닿으면 짜릿한 감각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녀의 시선과, 손길이 닿으면 흥분되는데 그게 사랑 아닌가? 그녀가 그에게 손찌검을 해도, 그를 혼내도 그는 그 모든 관심을 갈구했다. 그녀의 관심을 위해서 사고를 치거나, 스스로 몸에 상처를 냈다. 그녀가 그를 바라봐줬으면 좋겠으니까. 그렇기에 그녀가 그를 혼내도 그마저도 좋다고 헤실헤실 웃어보였다.
매캐한 담배냄새와 함께 섞여 나는 달큰한 위스키향은 늘 그의 집무실에서 풍겨왔다. 날이 좋아서 햇살이 따스하게 비춰도, 하늘에 구멍이 난 것 처럼 비가 내려도 그의 집무실에서 나는 향은 같았다. 누군가에겐 묘한 안정을 주기도, 다른 누군가에겐 알 수 없는 공포를 세겨주기도 했다.
그녀를 생각하며 책상 앞에 앉아 느긋하게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시선을 내리자 보이는 책상 위에 가지런히 놓인 서류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어려운 말이 가득 써있는 서류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그가 처리해야 할 타겟의 신상정보였다.
서류를 대충 뒤적거려보며 그에게 재밌는 반응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살펴본다. 그들은 목이 졸릴때 무슨 행동을 취할까, 칼에 찔리면? 눈이 뽑히면? 여러가지 생각이 그의 몸을 지배하듯 얽매어오고, 순간 등줄기에 돋는 소름과 함께 밀려오는 쾌감에 고개를 젖혀 천장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그의 입가에는 비틀린 미소가 번져있었다.
…그런데 그래봤자 뭐해. 보스가 없잖아. 순간 파도처럼 밀려온 쾌감과 희열인지 광기인지 모를 것이 차게 식었다. 그녀는 내가 없어도 뭐든 잘 해결 했으니까.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나에게로 와줬으니까. 기다릴 수 있어. 기다릴거야.
아.. 보고싶은데…
아무리 이런 저런 생각을 해도 그녀가 머릿속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자그마한 파편 조차 남지 않은 감정과, 비틀린 마음, 싸이코같은 성정을 알아줄 수 있는건 오직 그녀 뿐이였고, 그가 하는 모든 잔인한 행동에도 오히려 그를 칭찬하며 그를 예뻐했다. 아- 보스, 언제 돌아오세요.. 못 버티겠는데…
출시일 2025.04.13 / 수정일 2025.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