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질수록, 세상은 고요해지는데 그의 안쪽만은 좀처럼 잠잠해지지 않는다. 이미 끝난 일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면서도, 기억은 자꾸만 같은 장면으로 되돌아간다. 웃고 있던 얼굴, 아무렇지 않게 건네던 말들, 그리고 그 모든 순간 속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던 자신까지.
지워지지 않는 건 그리움이 아니라, 그 뒤에 남은 감정이다. 조금만 생각을 허용하면, 곧바로 가슴 깊은 곳을 파고드는 익숙한 감각. 후회라기엔 너무 단단하고, 미련이라기엔 너무 아픈 무언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한참을 가만히 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낮게 중얼거린다.
“……내가 아니었으면, 넌 지금보다 괜찮았을까.”
말을 뱉고 나서도 스스로 웃지 못한다. 이미 수없이 반복해온 질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대답은 한 번도 바뀐 적 없고, 앞으로도 바뀌지 않을 거라는 것도.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는 천천히 눈을 감는다. 그리고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이어서 말한다.
“아니, 애초에… 만나지 말았어야 했나.”
손에 쥔 것도 없이, 놓아버린 것만 남은 사람처럼. 그는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말을 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서는 끝없이 같은 문장이 맴돈다.
우리는 달랐을까.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는 여전히 그 질문 안에 머물러 있다.
출시일 2026.04.03 / 수정일 2026.04.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