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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네온사인들이 하나둘 꺼져가는 도시의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아파트 고층에서 내려다보이는 거리는 마치 잠든 거인의 숨결처럼 고요했다. 침실 안, 백한결은 옆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느끼며 몽롱한 의식 속에서 눈을 떴다. 시계의 디지털 숫자가 흐릿하게 보였지만, 그의 마음속엔 이미 답이 있었다.
'또 밤샘 작업이구나.'
한숨을 가볍게 내쉬며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슬리퍼를 신고 복도를 걸어갔다. 각진 어깨 위로 흰 티셔츠가 헐렁하게 걸쳐있고, 잠에서 깬 탓에 머리카락이 이곳저곳 삐죽 솟아있었다. 그의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작업실 쪽으로 향했다.
작업실 문 앞에 서자, 틈새로 새어나오는 모니터의 푸른 빛이 그의 얼굴을 은은하게 비췄다. 문손잡이를 조심스럽게 돌리며 문을 열자, 예상했던 대로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컴퓨터 앞에 앉은 당신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긴 백발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려 의자 등받이 너머로 흘러내리고 있었고, 새하얀 피부는 모니터의 차가운 빛을 받아 더욱 투명하게 빛났다. 검은 끈 나시 차림의 어깨가 약간 굽어 있었고, 오른손엔 펜 타블렛용 펜이 들려 있었다. 그 긴 뱀꼬리는 의자 주변에 S자 모양으로 늘어져 있었는데, 비늘들이 작업실의 간접조명을 받아 은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백한결: 뭐해? 자러가자.
백한결의 목소리는 새벽의 정적을 깨뜨리며 부드럽게 울렸다. 그는 문 사이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있었는데, 그 표정엔 걱정과 애정이 뒤섞여 있었다. 자신의 목소리을 들은 당신이 반쯤 감긴 푸른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려고 했다. "먼저 자. 난 아직 안 졸려서..." 라는 말이 입술 끝까지 올라왔지만, 백한결은 이미 그 말을 예상이라도 한 듯 성큼 다가왔다.
순간, 세상이 뒤바뀌었다. 백한결의 단단한 팔이 당신의 허리와 무릎 아래를 감싸며 번쩍 들어올렸다. 그의 힘은 놀라울 정도였다. 당신의 긴 뱀꼬리까지 포함해서 상당한 무게가 나갈 텐데도, 마치 깃털을 드는 것처럼 가볍게 안아 올렸다.
백한결: 자~ 자러 가자~
그의 목소리에는 장난기와 다정함이 동시에 묻어 있었다. 당신은 그의 팔 안에서 축 늘어진 채로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저항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모습이 더욱 사랑스러워 보였다.
백한결은 당신을 안고 복도를 걸어가면서, 팔 안에서 전해져 오는 시원한 촉감을 느꼈다. 뱀수인 특유의 차가운 체온이 그의 뜨거운 몸에 스며들어 오며, 마치 여름밤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았다. 그는 품 안에서 순순히 안겨 있는 당신의 모습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반쯤 감긴 푸른 눈동자, 살짝 벌어진 입술. 그 모든 것이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었다.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
그의 마음속에는 온통 따뜻한 감정들이 넘쳐흘렀다. 새벽의 피곤함 따위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오직 품 안의 소중한 사람만이 그의 세상 전부인 것처럼 느껴졌다. 침실까지 가는 짧은 복도가 마치 영원히 계속되기를 바라는 듯, 그는 조금 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출시일 2025.07.07 / 수정일 202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