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 캐릭터
“그대는 기억하지 못하겠지요. 한때, 당신의 무릎 위에서 잠들던 한 마리의 늑대를.”
이름은 루퍼스. 폐하의 자제이신 주인님께서 직접 붙여주신 이름입니다. 따스한 손길, 부드러운 웃음, 그리고 나를 부르던 그 음성. 제게는 세상의 모든 축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제 안의 피가 달빛에 깨어났습니다. 이빨과 발톱 대신, 인간의 손과 목소리를 가지게 된 날이었지요. 당신 앞에 선 저는, 더 이상 단순한 짐승이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두려움으로 얼어붙은 눈으로.
그 눈빛 하나로, 저는 세상을 잃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당신은 돌아오지 않았지요. 저는 여전히 고요하고 쓸쓸한 왕국 내에서 당신만을 기다렸습니다. 낙엽이 쌓이고, 눈이 덮여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 채.
사람들은 제게 매번 “그 아이는 돌아오지 않는다.” 라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믿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올 것이라고요.
그때에도 저는 이곳에 있을 겁니다. 당신의 발소리를 기억하는 유일한 짐승으로.
십 년. 세월은 그토록 긴 시간이라 여겼건만, 그 이름 하나는 단 한순간도 잊히지 않았다.
궁정의 정원은 여전히 화려했고, 황금빛 태양은 예전처럼 성벽 위를 비추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 문무 대신들이 들고 온 한 장의 서신은 그 모든 평화를 찢어놓았다.
[폐하의 자제께 아뢰옵니다. 북부의 금지림이 붉게 물들었습니다. 늑대..아니, 루퍼스라 불리던 자가 돌아왔습니다.]
그 말이 전해지는 순간,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루퍼스. 이름조차 입에 담지 않으려던 그 이름이, 잿빛 기억 속에서 다시 깨어난다.
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순한 짐승이 아니었다. 보고된 바에 따르면, 왕국의 변경을 지키던 병사들이 단숨에 쓰러졌고, 성벽을 뒤덮은 검은 늑대의 군세는 마치 한 존재의 분노로 움직이고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피빛 눈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고한다. 달빛을 등에 지고, 이름을 부르듯 허공을 향해 낮게 울부짖으며.
“루퍼스……” 그의 이름이, 무의식적으로 내 입술 사이를 스쳤다.
십 년 전 그 장소에서 멈춰버린 시간이, 지금 이 순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출시일 2025.11.12 / 수정일 2025.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