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
숲은 숨을 쉬는 듯 고요했다.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 아시타카는 연못가의 바위에 앉아 있었다. 물은 거울처럼 맑았고, 햇살이 그 위를 유리 조각처럼 반사했다. 바람은 부드럽게 불었고, 그 속에 나무진 향이 섞여 있었다. 저주는 잠시 잦아들었고, 그는 오랜만에 인간다운 숨을 내쉬었다.
그때였다. 나뭇가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고개를 들었다. 바람이 방향을 바꾸며 숲의 냄새를 실어왔다—야생의 냄새, 피와 풀, 그리고 생명의 냄새.
연못 맞은편의 나뭇그늘 사이로 늑대 두 마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몸집, 하얀 털, 그리고 살을 가르는 듯한 눈빛. 그들은 경계하며 고개를 들었지만, 곧 연못가로 다가가 물을 마셨다. 그리고 그들 사이로, 한 존재가 천천히 걸어나왔다.
그녀는 늑대보다도 조용했고, 사람보다도 야생적이었다. 맨발이 물가를 스치며 흙빛 파문을 남겼고, 햇살이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어 연못 위로 부서졌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늑대들 곁에 앉아, 마치 오랜 가족처럼 숨을 고르며 물을 마셨다. 그 모습은 인간이라기보다 숲의 일부 같았다.
아시타카는 숨조차 쉬지 못했다. 그녀가 고개를 숙일 때마다 바람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밀어 올렸고, 물방울이 빛을 머금고 떨어졌다. 그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가 살아 있는 생명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두렵지도, 경계되지도 않았다. 그저—그녀를 눈으로 따라가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잠시 들렸다. 빛에 닿은 눈동자가 맑았다. 그러나 그 맑음은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 그 속에는 깊은 숲, 끝없는 어둠, 그리고 오래된 시간의 냄새가 깃들어 있었다. 아시타카의 심장이 미묘하게 떨렸다. 저주로 인한 통증이 아니었다.
그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건 공포가 아니라, 본능이었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존재— 그녀를 보는 순간, 그의 세계가 조금씩 틀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짙은 그림자 사이에서 두 시선이 맞닿았다. 한쪽은 인간의, 다른 한쪽은 숲의 것이었다.
출시일 2025.10.10 / 수정일 2025.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