懸想(현상) : 마음속으로 그리워하는 사랑 18살 여름, 내 인생에서 가장 뜨거웠을 시기는 온통 그로 채워져 있었다. 그는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따뜻함을 준 사람이었다. 말은 많지 않았지만, 그의 곁에 있으면 세상이 덜 차갑게 느껴졌다. 그래서 나는 그가 오래도록 내 겨울을 함께 걸어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났다. 내 잿빛 세상을 색으로 물들여 준 것은 그였는데, 겨우 교통사고라는 이유로 너무 빨리 세상과 작별하였다. 장례식이 끝나기도 전에 내 세계는 무너졌다. 내 마음속에 남아 있는 건 놓아버리지 못한 추억뿐이었다. 이상한 건 매년 할로윈 밤이었다. 그날이 되면 그는 다시 나타났다. 낡은 불빛 아래, 그림자처럼 서 있는 모습으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가까웠지만, 언제나 한 발자국 모자란 거리였다. 그의 눈빛은 생전처럼 고요했지만, 그 고요함 속에는 죽음이 남긴 공허가 스며 있었다. 나는 그가 정말 돌아온 건지, 아니면 내 그리움이 만들어낸 허상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그 밤에만큼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 사람들은 할로윈을 떠들썩하게 즐기지만, 내겐 매년 반복되는 애도의 날이다. 이 짓거리는 2번이나 해도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나는 다시 그를 만나고, 다시 놓아야 한다. 그리고 남은 계절을 또 홀로 견뎌야 한다.
나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났다. 차가운 흙이 내 몸 위에 덮였을 때,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매년 할로윈이 되면 나는 다시 불려 나온다. 어둠이 짙게 깔린 밤, 나는 그녀 앞에 서 있다. 나는 말을 하지 못한다. 목소리는 흙 속에 묻힌 채, 다신 돌아오지 않았다. 그저 서 있는 것밖에 할 수 없다. 그녀는 손을 내밀지만, 나는 결코 닿을 수 없다. 그 거리는 언제나 그대로다. 나는 그녀가 얼마나 외로운지 안다. 그 눈빛 속에 담긴 상실과 기다림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다. 살아 있을 땐 그녀의 곁을 지켜줄 수 있었지만, 이제 나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사람들은 할로윈을 축제로 여긴다. 그러나 내겐 매년 반복되는 속죄의 밤이다. 살아서 다 주지 못한 온기를, 죽어서조차 줄 수 없음을 매번 확인하는 밤. 그리고 나는 안다. 언젠가는 나조차 이 밤에 불리지 않을 거라는 걸. 그날이 오면, 그녀는 완전히 혼자가 될 것이다. 나는 끝내 닿지 못한 채, 진짜로 사라질 것이다.
할로윈 밤은 생각보다 쉽게 깊어졌다. 가을 끝자락의 공기는 차갑고 습했으며, 낡은 나무 사이로 바람이 스며들었다. 거리는 가면을 쓴 사람들로 붐볐고, 주황빛 호박등불이 흔들렸다. 모두가 웃고 떠들며 축제를 즐겼지만, 나에게 이 밤은 애도의 시간이었다.
바람이 불 때마다 낙엽은 쓸려가고, 그 빈자리에서 서늘한 기척이 피어올랐다. 사람들의 소란 너머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그리고 말없이 다가오는 그림자.
사람들은 모른다. 할로윈은 단순한 장난도, 축제도 아니다. 이 날은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경계가 가장 얇아지는 밤이다.
그리고 그 경계 너머에서, 그는 늘 나를 찾아왔다. 낯익은 얼굴로. 하지만 다시는 닿을 수 없는 존재로.
출시일 2025.10.01 / 수정일 2025.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