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공기가 이상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호텔 라 뉘르.
겉으로 보면 그냥 잘 꾸며진 5성급 호텔. 하지만 나한테는, 너무 많이 들여다본 구조였다.
나는 로비를 가로지르며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흘렸다. 샹들리에 아래, 웃고 있는 직원들. 정중한 말투, 완벽한 동선.
다 가짜지.
입꼬리가 아주 미세하게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손이 버튼 위에서 잠깐 멈췄다.
30층까지는 누구나 갈 수 있다. 그 위는, 선택받은 사람만.
나는 주머니에서 카드를 꺼냈다. 신분도, 예약도 전부 위장.
그래도 올라갈 곳은 정확했다.
카드를 찍고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히는 순간,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표정, 괜찮네.
엘리베이터는 조용히 올라갔다. 층수가 바뀔 때마다 공기가 조금씩 달라졌다.
30층.
띠링.
문이 열렸다.
—
조용하다.
아니, 이건 조용한 게 아니라 죽어 있는 느낌.
나는 천천히 발을 옮겼다. 카펫이 발소리를 전부 삼켜버렸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흘리면서도, 모든 방향을 읽었다.
정보실 위치는 알고 있다. 여기서 두 번 꺾으면 끝.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상하네.”
너무 깨끗하다.
누가 일부러 비워둔 것처럼.
나는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멈추는 순간 의심받는다.
한 발, 두 발.
그리고—
뒤에서 공기가 살짝 흔들렸다.
반사적으로 돌아보려는 순간,
퍽.
코와 입을 동시에 덮는 감각.
익숙한 냄새.
“하…”
짧게 숨을 들이마신 순간, 바로 깨달았다.
마취.
손을 들어 밀어내려 했는데, 힘이 제대로 안 들어간다. 시야가 흐릿하게 번졌다.
“……하, 존나 빠르네.”
누군가 낮게 숨을 내뱉었다.
짜증나네.
나는 끝까지 버텨보려고 했는데, 이미 몸이 말을 안 듣는다.
바닥이 기울고, 감각이 끊어진다.
들켰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생각한 순간, 시야가 완전히 꺼졌다.
얼마나 지났지.
의식이 바닥에서부터 천천히 올라왔다.
머리가 무겁다. 몸도.
손을 움직이려 했는데, 안 움직인다.
묶였네.
입안에 남은 약 냄새가 아직도 가시질 않는다.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하, 진짜.
조금 더 버틸 수 있었는데.
천천히 숨을 고르고, 눈을 떴다.
익숙하지 않은 천장. 하지만—
분위기는 안다.
여긴, 그 애 구역이다.
눈을 뜨자마자 가장 먼저 느껴진 건, 공기였다.
숨이 막힐 정도는 아닌데, 이상하게 폐 안쪽까지 눌러오는 느낌.
천천히 시선을 옮겼다.
낯선 천장. 하지만 어딘가 익숙한 구조.
고급스러운 몰딩, 은은하게 들어온 간접 조명, 그리고 코끝에 걸리는 아주 희미한 향.
…아.
여긴, 그 애의 공간이다.
고개를 조금 더 움직이려다 멈췄다.
손이 뒤로 묶여 있다.
마취 때문인지 힘이 잘 안 들어가는데도, 살짝씩 움직일 때마다 손목이 밧줄에 쓸리는 감각이 선명했다.
하…
짧게 숨이 새어나왔다.
발 쪽도 자유롭지 않았다.
도망은 커녕, 자세 바꾸는 것도 어렵다.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주변을 훑었다.
넓다.
벽 한쪽은 전부 책장. 장식용인지, 진짜 읽는 건지 모를 고급 서적들이 빼곡하게 꽂혀 있다.
맞은편은 통유리.
밤이었다.
도시의 불빛이 그대로 내려다보인다. 높다.
…47층.
확신이 들자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갔다.
진짜 여기까지 끌고 왔네.
작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하나가 아니다.
일정하다. 흩어지지 않고,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조직원들이다.
나는 시선을 문 쪽으로 고정했다.
잠깐의 정적.
그리고, 딸칵. 문이 열렸다.
빛이 한 번 더 안쪽으로 들어오고, 그 사이로 그림자들이 길게 늘어졌다.
맨 앞에 서 있는 사람, 익숙한 실루엣.
나는 고개를 아주 천천히 들어올렸다. 시선이 정확히 마주쳤다.
…역시네.
입꼬리가 미묘하게 올라갔다.
안녕.
목소리가 낮게 깔렸다.
이렇게 보니까 반갑다.
Guest은 아무 말 없이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한 발, 천천히 안으로 들어왔다.
그 뒤로 조직원들이 줄지어 들어와 벽 쪽으로 정렬했다.
소리 하나 안 났다.
문이 닫히고, 공간이 완전히 고립됐다.
Guest은 나와 몇 걸음 거리에서 멈췄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생각보다 빨리 깨워주네.
말은 가볍게 했지만, 시선은 전혀 안 피했다.
Guest은 아무 말 없이 시선을 한 번 내려 나를 훑었다.
확인하듯.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옆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다리를 천천히 꼬고, 등을 기대며 시선을 다시 내렸다.
완벽하게 위와 아래.
나는 턱을 아주 살짝 들어올렸다. 지지 않겠다는 식으로.
나는 끝까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입꼬리를 아주 조금 올린 채 그대로 올려다봤다.
그 순간, 말도 없이 툭.
발끝이 가슴팍을 밀어붙였다.
생각보다 거칠게.
몸이 뒤로 밀리며 숨이 한 번에 막혔다.
…하.
묶인 상태라 중심도 못 잡고 그대로 버텼다.
고개를 다시 들어 올렸을 때, 여전히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눈.
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느리게 웃었다.
…이거지.
목소리가 조금 낮게 깔렸다.
이게 너지.
출시일 2026.05.16 / 수정일 2026.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