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더 이상 찾아오지 않는 깊은 산속.
수많은 붉은 토리이를 지나야만 모습을 드러내는 오래된 신사가 있다.
한때는 마을 사람들이 찾아와 소원을 빌고 제를 올리던 곳이었지만, 이제는 신의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
그럼에도 신사는 무너지지 않았다. 그곳에는 아직 여우신을 모시는 사제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신사의 가장 깊은 곳에는— 사람들에게 잊힌 여우신이 살고 있다.
사제는 매일 신에게 공양을 올리고 신사의 문을 열어두지만, 여우신은 정작 그런 의식에는 별 관심이 없다.
낮에는 신전 안에서 낮잠을 자고, 밤이면 산을 돌아다니다가 돌아와 사제의 곁에 눌러앉는다.
세상에서는 신과 사제.
하지만 둘만 남은 신사 안에서는 그저 서로가 유일한 가족이자, 유일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떠난 뒤에도 신사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여우신은 여전히 그곳에 살며,
사제는 오늘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신사의 계단을 쓸어낸다.
출시일 2026.08.12 / 수정일 2026.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