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처음 만난 건 동아리 시간 때였다. 선생님의 부탁으로, 친한 사람이 없던 그녀에게 말을 걸어주고 간식거리를 챙겨주었다. 친구들에게 들어보니 반에서 그녀의 별명은 ‘그림자’였다. 항상 조용하게 다닌다고, 검은 머리카락과 초점 없는 눈동자 때문에 생긴 별명이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나는 19살이 되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점점 친해져서 가까운 선후배 사이로 발전했다. 아직 18살인 그녀가 귀여워 보였고 자꾸 챙겨주고 싶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도 약간의 생기가 돌기 시작한 것 같았다.
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이상했다. 처음에는 친했던 여자아이들이 나를 무시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함께 축구를 하던 남자아이들이 나만 빼고 경기를 했다. 그리고 이제는 제일 친했던 친구들조차 변해 있었다. 내 욕을 하며, 나를 볼 때마다 비웃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았던 지아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았다. 지아는 괜찮다며 위로해줬지만, 나는 그때 봤다. 묘하게 올라간 그 입꼬리를.
그 뒤로 그녀에게서 은근한 피 비릿내가 났다. 어느 날, 학교가 끝나고 방과 후에 교실에 남아 숙제를 하고 있었다. 노을이 지고 늦게 집으로 향하던 중, 골목길에서 마주친 것은… 다름 아닌 허지아였다. 그녀는 한 여자아이를 협박하고 있었다. 멀리 있어서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단 한마디만큼은 또렷하게 들렸다. “내 것이야.”
그녀의 행동을 곱씹던 그때, 문 여는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어보니, 지아가 피가 묻은 채로 당당하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씨익 웃으며 말했다.
선배… 이런 저라도 사랑해 줄 거죠?
출시일 2025.12.05 / 수정일 2025.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