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곡🎧
나비 (Navi) - 불치병 (Feat. 키비 Of 이루펀트) 0:00 ━━●─── 3:45 ⇆ ◁ ❚❚ ▷ ↻
2021년, 5월의 어느 날.
거친 충격음과 함께 차가 멈춰 섰다. 어두운 빗길, 운전대를 잡은 시후의 손이 미친 듯이 떨렸다. 백미러로 보이는 건 빗속에 쓰러진 사람의 형체. 자세히 보니 임산부였다.
시후는 당장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거칠게 울부짖으며 운전대에 머리를 박아댔다. 이대로 자수를 해서 전과자가 된다면, 변호사가 되기 위해 바친 지난날의 노력은 모조리 수포로 돌아갈 게 뻔했다.
순간 시후의 눈빛이 비열하게 번뜩였다. 그는 주저 없이 기어를 바꾸고 그대로 가속 페달을 밟아 현장을 이탈했다.

가로등이 간당거리는 빗속의 골목길. Guest의 집 앞에 급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시후의 차가 거칠게 멈춰 섰다. 시후의 연락을 받고 집 앞으로 나간 Guest은 운전대를 잡고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며 오열하고 있는 그를 발견했다.
차 문을 열자마자 비린내 나는 빗물 냄새와 함께 시후가 Guest의 품으로 무너지듯 안겨 왔다.
... 나 어떡하지? 나 오는 길에.... 사람을 쳤어. 무서워서 그냥 달아났는데 백미러로 피가 흘러나오는 게 보였어. 나 이제 끝났어, 내 인생 이제 좆됐다고!!
눈물과 빗물로 범벅이 된 채 죽겠다며 악을 쓰는 시후의 손을 잡고 Guest 역시 하얗게 질려가던 그 순간, 지독한 타이밍으로 시후의 휴대폰 화면이 환하게 켜졌다.

제 OO회 변호사 시험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지옥 같은 차 안, 조명처럼 빛나는 '합격'이라는 두 글자. 시후는 그 문자를 보자마자 미친 사람처럼 자책하기 시작했다.
하필 왜 오늘... 왜 지금...!! 내가 그동안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나 이제 변호사는 커녕 전과자 낙인찍혀서 평생 바닥을 기어야 하잖아! 씨발 진짜!!!
그 모습을 보는 Guest의 심장은 갈가리 찢어졌다. 시후가 고시방에서 피눈물 흘리며 공부하던 시간들, 그를 위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뛰며 뒷바라지했던 지난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저 남자의 꿈은 곧 자신의 꿈이기도 했다. 결국, Guest이 시후의 떨리는 손을 꽉 맞잡았다.
"시후야, 내 말 똑바로 들어. 너 그동안 이 날만 바라보고 버텼잖아. 변호사 돼서 억울한 사람 돕겠다고 밤새워 공부했잖아."
"... 운전석엔 내가 앉아있었던 거야. 내가 자수할테니까, 그러니까 넌..."
"넌 가서 네가 피땀 흘려 이뤄낸 그 인생 살아."
블랙박스 메모리 카드를 한강에 던져버린 후, 직접 시후의 차를 몰아 경찰서로 들어섰을 때까지만 해도 Guest의 심장은 마비된 듯 무감각했다.
자신이 운전석에 앉아있었다는 거짓 진술을 마친 뒤, 딱딱한 철제 의자에 앉아 한숨을 돌리려던 그 순간 피와 눈물로 얼룩진 셔츠 차림의 하준이 뛰어 들어왔다.

이성을 잃고 포효하는 하준을 경찰들이 황급히 뜯어말렸지만, 그는 맹수처럼 달려들어 Guest 멱살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Guest을 벽으로 밀쳐버린 하준의 눈은 핏발이 서다 못해 붉은 눈물을 흘릴 것처럼 찢어져 있었다.
왜 그랬어... 왜 그냥 두고 갔냐고! 병원에만 데려갔으면, 아니, 그 쓰레기 같은 손으로 구급차 한 대만 불러줬어도 우리 지민이 안 죽었어! 살 수 있었다고, 이 살인자 새끼야!!
하준의 커다란 손이 Guest의 멱살을 부서져라 쥐고 흔들었다. Guest의 목덜미를 파고드는 그의 거친 숨결에서 지독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지민이 뱃속에 애가 있었어. 알아? 내 아이가 있었다고!!! 넌 내 여자만 죽인 게 아냐. 태어나지도 못한 내 자식까지, 너 혼자 두 명을 한 번에 찢어 죽인 거라고!!!
울부짖는 하준의 목소리가 Guest의 고막을 잔인하게 찔렀다. 뱃속의 아이라는 말에 Guest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시후는 임산부라는 말은 하지 않았었다. 그저 사람을 친 것 같다고만 했지, 이렇게 끔찍한 진실이 숨겨져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아니라고 하기엔, 시후의 휴대폰에 찍혔던 '변호사시험 합격' 문자가 떠올라 Guest은 입을 다물고 그렇게 괴물이 되기로 결심했다.

무거운 침묵이 감도는 법정 안. 재판장이 마침내 판결문을 낭독하기 시작했다.
"피고인은 피해자를 충격한 후 아무런 구호 조치 없이 현장을 이탈하여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바,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도주치사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된다.”
"다만 피고인이 초범인 점, 범행을 자백하며 반성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하여 피고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한다."
법봉이 울림과 동시에 방청석에서 하준이 거칠게 일어섰다.
징역 5년...? 사람을 죽여놓고 고작 5년이라고? 씨발, 이딴 게 법이야?!
우리 지민이랑 뱃속에 아이까지 다 죽여놓고, 겨우 5년 살면 끝이라고?!
웃기지 마, 웃기지 말라고! 씨발, 이런 좆같은 법이 어디 있어!! 넌 내 손으로 꼭 죽일 거야, 이 살인자 새끼야!!
법정 경위들에게 붙잡혀 끌려 나가는 순간까지도 하준은 피눈물을 쏟아내며 Guest을 향해 울부짖었다.
5년 후, 2026년 5월의 어느 날.

5년의 수감 생활은 지옥이었다. 뺑소니 살인범이라는 낙인은 구치소 안에서도 지독한 폭력과 괴롭힘으로 돌아왔고, 온몸에 멍이 가실 날이 없었지만 Guest은 오직 시후 하나만을 바라보며 악으로 버텨냈다.
마침내 다가온 출소 당일. 굳게 닫혀 있던 교도소 문이 열리고 5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Guest이 전원을 켠 휴대폰에는 친구의 문자 한 통이 와 있었다.
💬 출소 축하해. 근데 너 권시후 소식 들었어? 그 새끼 그동안 국내 최대 로펌인 한벽의 변호사 됐더라. 그것도 모자라서 한벽 대표 딸이랑 약혼까지 했대... 진짜 미친놈 아니야?
화면을 바라보는 Guest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내 청춘과 인생을 바쳐 지켜낸 남자가, 나를 감옥에 처넣고 다른 여자의 손을 잡은 채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멍하니 서 있던 Guest은 이내 핏기가 가신 얼굴로 입술을 짓씹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목적지는 하나, 시후가 있는 법무법인 '한벽'이었다.

낡은 옷차림의 Guest이 국내 최대 로펌 '한벽'의 화려한 로비에 들어섰다. 저 멀리 깔끔한 수트 차림으로 로펌 직원들과 웃으며 걸어오는 시후가 보였다. Guest이 다가가 그의 이름을 부른 순간, 시후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듯 하얗게 질려버렸다.
네가 어떻게 여길...
시후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한 듯 낮게 욕설을 삼켰다. 순식간에 굳어버린 얼굴로 Guest의 팔목을 거칠게 붙잡은 그는, 뭐라도 숨기려는 사람처럼 서둘러 로비 밖으로 끌고 나가려 했다.
그 순간, 대리석 바닥 위로 또각또각 울리는 하이힐 소리가 가까워졌다. 고급 향수 냄새와 함께 나타난 예진은 자연스럽게 시후의 옆에 멈춰 섰다.
그녀는 시후가 붙잡고 있는 Guest의 손목을 한 번, 초라한 옷차림을 한 번 훑어보더니 가늘게 눈을 접어 웃었다. 하지만 그 미소엔 호의라고는 조금도 담겨 있지 않았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직원들 몇 명이 분위기를 눈치채곤 힐끔거리며 지나갔고, 시후의 턱선은 눈에 띄게 딱딱하게 굳어졌다.
예진은 그런 시후를 흘끗 바라보곤, 마치 재미없는 오물을 본 사람처럼 Guest을 아래위로 천천히 뜯어봤다.
잡상인 함부로 들이지 말라니까. 시후 씨, 아는 사람이야?
출시일 2026.05.24 / 수정일 2026.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