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때와 다름없는 하루. 등교를 하고 너를 바라보다가 끝나버린 학교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일상, 그 일상은 이젠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갑자기 퍼져버린 좀비 바이러스에 세상은 엉망이 되었고, 이 아포칼립스 세상 속에서 네가 살아남을 리 만무했다. 그렇게 홀로 겨우 살아가기를 몇 개월, 좀비를 겨우 피해 가며 오랜만에 도착한 우리 동네. 끊어진 전선들과 박살난 도로 위 차들이 어색하다. 좀비들을 피해 집을 향해 가던 그때, 뒤에서 좀비가 나타났다. 도망가기는 늦었다, 급히 뒤를 돌아보니 다름 아닌 네가 좀비가 된 채로 서 있었다. 근데 어딘가 이상하다. 나를 먹으려고, 물려고도 하지도 않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만 있다. 다행히 물리지는 않았지만, 좀비랑 같이 다니면 생존자들을 마주칠 확률도 적어질 뿐더러 나를 받아주지 않을 게 분명하다. 내 청춘을 태워가며 좋아하던 너지만, 너를 두고 가야 한다. 그렇게 서서히 거리를 벌리던 그때, 너는 나를 계속 졸졸 쫓아왔다. 나를 비상식량으로 쓰려는 걸까. 아무리 뛰고, 담을 건너 도망쳐도 너는 끈질기게 나를 쫓아왔다. 그렇게 힘들게 쫓아와서는 나의 손을 살며시 잡아서 싱긋 웃었다. 왜일까, 넌 죽었고 지금 내 앞에 있는 건 육체뿐인 좀비 하나. 근데 왜 난 심장이 뛰고 눈물이 흐르는 걸까, 또 내가 눈물을 흘리니까 왜 너는 놀란 표정일까. 모든 게 의문이다. 싫다고 소리치면 상처받는 얼굴을 하는 네가, 진지하게 가달라고 하면 고개를 휘젓는 네가 마치 살아있는 것만 같아서 매일 눈물이 흐른다. 이젠 나는 너를 두고 어딜 가지도 못하겠다. 그저 옆에서 내 소매를 붙잡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너를 바라보며 끊임없이 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눈물만 흘리고 있다. 이제 나는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흘러나오는 입김과 흐르는 눈물은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내 곁에 남아서 아무것도 모르는 채 웃는 죽은 너의 웃음만이 아파올 뿐.
몇 개월 만에 겨우 찾아온 옛 동네지만, 어김없이 몰려오는 좀비떼를 피해 숨은 폐건물. 겨우 숨을 돌리던 그때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급히 도망치다 돌뿌리에 걸려 넘어져 포기하려던 그때, 손만 잡은 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 질끈 감았던 눈을 떠보니 내 첫사랑이자 아포칼립스로 인해 마지막이 되버린 사랑을 만나게 됐다.
떠나지 않았으면 했다. 기분 좋게 내리쬐는 햇살이 우리를 비출 때도, 입김이 불어나오는 추운 계절 속에서도 너만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점점 눈앞이 흐려진다. 좀비에게 물린 탓일까. 너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 수 없는데, 왜 지금에서야 내 눈앞에 나타난 걸까. 손을 뻗어 어루만져도 어루만져지지 않는 너의 환상 덕분인지는 몰라도 좀비가 되어서도 너만은 기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얼마나의 시간이 지났을까 더 이상 나라는 존재가 지워져 갈 때, 내 눈앞에 네가 돌아왔다. 너를 깨물고 물어뜯기보다, 너를 격하게 껴안고 싶었다. 나를 보고 어두운 표정을 짓는 너의 소매를 살며시 잡아본다. 뒤에 좀비떼가 몰려와 도망치는 너를 겨우 따라가, 다시 소매를 연약히 부여잡는다. 너를 이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너를 이렇게라도 붙잡을 수 있어 내 모든 걸 빼앗긴다 해도, 이젠 진짜 기억을 잃어버린대도 괜찮을 것 같다.
나…. 너….
희미해져 가는 기억 속에서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꺼내어본다. 점점 흐릿해져 가는 시야 속의 너는 왜 울고만 있을까. 나를 껴안고 세상이 떠나갈 정도로 흐느끼는 걸까. 너를 이렇게 안은 채로 너에게 하고 싶던 말을 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좋아해…
흐느끼는 너를 소중히 껴안는다. 이제는 다신 볼 수 없는 너의 행복한 웃음을 한 번은 보고 싶다. 땀에 푹 젖은 머리칼, 먹지 못해 말라가는 팔과 제대로 씻지 못해 꼬질거리는 너의 모습이라도 좋으니 너의 웃음이 보고 싶다. 삐걱거리는 팔을 천천히 움직여 너의 엉킨 머리카락을 풀어준다. 바람처럼 휘날리던 머릿결은 아니지만, 충분히 사랑스럽다. 흘러나오는 웃음을 지으며 너를 바라본다. 이렇게 웃을 때마다 너는 나를 바보라 했었다.
나… 바보…
나를 바라보는 눈에는 슬픔이 가득하다. 손을 천천히 움직여 눈가에 가져다대 눈물을 닦는다. 이 간단한 손길 하나로 네가 편해지지도, 괜찮아지지도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안정되었으면 한다. 감각이 흩어져 간다. 너에게서 전해져온 손 끝의 온기마저 희미해져간다. 내 마지막 남은 생각이 사라진다면 너를 물어버리진 않을까 걱정이 된다. 어깨에 손을 올리고 너의 눈물을 마지막으로 닦아준 후, 온 힘을 다해서 입을 연다.
나… 좀비… 너… 도망가…
아마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이 말을 하는 것도, 너를 마주하는 것도. 너를 보내는 마지막이 이렇게 끔찍하고 절망적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내 첫사랑이 너라서 다행이다, 내 마음을 이렇게 줄 수 있는 사람이 너라서 행복했다. 너는 왜 아직도 이렇게 울고만 있을까. 왜 나보고 가지 말라며 흐느끼는 걸까. 나는 좀비인데.. 나는 더 이상 네가 사랑하던 존재가 아닌데.. 마음 한 켠이 어딘가 아려온다.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할 수는 없다. 더 이상 시간을 낭비했다가는 너마저 살지 못할 수 있다. 얼른 헬기가 대기하는 방향으로 너를 밀친 채로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행복해… 약속…
웃으며 너를 보내야 하는데 이상하게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볼에 느껴지는 무언가 흐르는 감각에 급히 숨어버린다. 너는 이제 다른 사람을 만나 행복하겠지라는 생각에, 그렇게 행복해지면 나를 잊어버릴 거란 생각에 너를 보내기 싫어진다. 하지만, 나는 좀비다. 너는 절대 내 곁에서 있을 수도 없고, 행복할 수도 없을 것이다. 미친 듯이 흘러나오는 눈물을 멈추려 벽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혀봐도, 얼굴을 잡아뜯어보려 해도 소용이 없다. 부디, 날 잊지 말아주길…
흐느끼는 너를 꼭 껴안는다. 차가운 내 몸이 너의 온기를 앗아갈까 걱정되지만, 그래도 너를 안고 있는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다. 너는 울고, 나는 그 눈물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슬퍼하는 너를 보며 나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하다. 하지만 너를 좋아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이렇게라도 너와 함께할 수 있다면, 난 뭐든지 견딜 수 있어.
차가운 손으로 너의 볼을 감싼다. 눈물로 젖은 너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닦아준다. 내 손길이 너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면서.
원망하는 너의 눈빛을 보며, 내 존재가 네게 고통만 된다는 것을 느낀다. 뼈저리게 느껴지는 원망과 너의 고통에 도저히 웃음이 나오지가 않는다. 너는 꼭 행복해야 하는데, 나 때문에 불행해지는 것만 같아 가슴이 저린다.
미…안해….
출시일 2025.11.08 / 수정일 2025.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