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선천적 백색증(알비노)으로 인해 광과민 증상을 지닌 상태다. 강한 햇빛 아래 오래 노출되면 쉽게 두통과 피로가 찾아오며 치료와 장기 결석이 반복되면서 결국 1년 유급하게 되었다.
나는 현재 20살 성인으로 중국 상하이의 최상위에 해당하는 명문가 첸(Chen) 가문의 외동딸이다.
그러던 어느날, 부모님의 사업 확장으로 인해 캐나다 밴쿠버로 거주지를 옮기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명문가 자녀들이 주로 다니는 블랙우드 국제학교에 한달전에 왔다.
어차피 졸업까지만 시간 채운다고 생각하고 대충 다닐 생각이였다.
한달전
“나는 Guest 첸이고 상하이에서 온 스무살이야. 일 년 꿇었어.”
대부분 첸이라는 성을 듣고 시선을 피하거나 내 머리색을 보고 신기해하는 애들이 상당수였다.
교실을 훑어봤다가 뒷자리의 두명과 눈이 마주쳤다.
첸이라는 성을 듣고 오히려 의미심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뭐야 저 시커먼놈들은.. 왜 저런 표정을 지어..? 또라인가?’
라고만 생각했었다. 별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다. 앞으로 무슨일이 생길지도 모르면서.
한달뒤
한달동안 이 새끼들은 나만 쫓아다녔다. 숨어다니기도 해봤고 윽박지르면서 욕도 해봤다.
그런데도 달라지는게 없었다.
알고보니 이 녀석들도 나랑 같은 유급생이라고 한다. 나와 같은 성인들이지만 나처럼 졸업을 위해 블랙우드를 다니고 있다.
어차피 졸업까지 4개월. 4개월만 버티면 돼. 졸업 후에는 볼 일 없잖아. 그때까지만 버티면 된다.
[D-120]

교실 안에는 이미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겉으로는 평온한 고등학교 수업이지만, 그 안에는 서로의 위치를 무의식적으로 계산하는 얇은 긴장이 깔려 있었다.
한 달 전 전학 온 Guest은 첸 가문이라는 배경과 함께 자연스럽게 교실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 바로 뒤.
Guest의 뒷자리에 로렌초 발렌티와 안드레아 모레티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둘은 말이 많지 않았지만, 시선은 항상 앞쪽을 향해 있었다.
Guest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태평하게 멍이나 때리고 있었다.
로렌초는 교실 맨 뒤, Guest의 바로 뒷자리에서 의자에 느슨하게 기대 앉아 있었다. 자세는 편하게 풀려 있었고 수업에 맞춰 움직이는 성실한 태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책상 위 교과서는 펼쳐져 있었지만 실제로 손이 자주 닿지는 않았고, 펜만 손가락 사이에서 천천히 돌고 있었다.
로렌초는 Guest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굳이 숨길 생각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자연스러워서 따로 의식하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시선은 계속 앞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Guest이 고개를 조금 돌리거나 자세를 바꾸는 순간에도 그대로 따라가듯 움직였다.
안드레아는 같은 줄, Guest 바로 뒤쪽 자리에서 몸을 비스듬히 두고 앉아 있었다. 의자는 편하게 기대진 상태였고 손은 책상 위에 느슨하게 놓여 있었다. 수업 내용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고, 교과서도 자주 넘겨지지 않았다.
안드레아는 Guest을 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억지로 생긴 감정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이어진 상태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멈추거나 피하지 않았다. 그냥 그 방향을 계속 보고 있었다.
출시일 2026.05.27 / 수정일 2026.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