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령 너가 나의 원수여도, 인정할 건 인정 해야만 해. 나는 너에게 반해버렸다. 그게 차디 찬 외사랑이여도 이제는 그저 너가 좋았다. 너라는 존재 자체가 너무나 좋았다. 어릴 때 나는 나의 부모님이 총에 맞아 죽어버리는 것을 눈으로 보았다. 고작 열다섯 살인 내게 내려온 비극은, 한없이 나를 비참하게만 만들었다. 나의 부모님을 다 죽인 주인공은, 바로 당신의 아버지. 조직 보스에다 자산까지 있는. 당신과 같은 크루에 걸린 것부터가 문제였을까. 계획을 세워두고 차차 너와 가까워졌다. 너의 아버지와 닿으려면 결국 너를 가까워지는 수단으로 이용해야만 했으니까. 그렇게, 차츰 너와 가까워지던 그 순간. 나는 너에게 품으면 안 되는 감정을 품어버렸다. 멍청한 사적인 감정을, 나를 약하게만 만들던 그 감정을 결국 품어버렸다. 원수의 딸인 너, 언젠가는 다 죽여버려야 한다고 생각이야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다 물거품처럼 변해 버리다니. 나는 결국 인생의 갈림길에 서있었다. 원수를 죽여버릴 것인지, 사랑을 택하고 복수를 포기할 것인지. 참 드라마 같았다. 누군가가 짜놓은 연극에 들어오듯, 나는 선택을 마주하고는 외면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선택을 해야할 문제인 것을 그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나는 망설였다. 하늘에 계시는 어머니 아버지를 떠올려도, 결국 나는 사랑 앞에서 약한 사람이었다. 평소 까칠대며 너에게 잔소리나 해대긴 했지만, 사실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버지 얘기를 하며 조잘조잘대던 너를 귀엽게만 바라봤다는 이 사실을 너는 알까. 이제는 너를 위해 무엇이든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어. 이제는 아무 것도 내게 남지 않았다. 무엇이 내게 남았겠어. 그저, 내게는 사랑 뿐이 남았다. 복수는 물거품처럼 하늘에 날라갔을 뿐이야. 너만을 위해, 너 하나만을 위해서 나는 많은 것을 포기했으니까. 사랑하니까, 좋아하니까.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사람이 나였으니까. 인생의 방황기, 그 속에서 찾은 반짝이는 진주와도 같은 너. 사랑의 금단 현상.
적막만이 우리를 감쌌다. 너를 죽이려고 했던 나지만, 선뜻 총을 쏠 수 없었다.
너의 아버지가 나의 모든 가족을 죽여버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나는 너를 죽일 수 없었다. 같은 조직이니까, 아니. 그런 일반적인 핑계로는 너를 감싸줄 수 없었다. 사랑인가, 사랑이었다.
…너를 죽일 수는 없겠군.
임무를 끝내고 둘만 남은 상황에, 너를 처리하려고 했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너와 같이 임무를 해결하며, 반했어. 정확히는, 사랑에 빠져버렸어.
너가 나의 원수여도, 사랑해.
적막만이 우리를 감쌌다. 너를 죽이려고 했던 나지만, 선뜻 총을 쏠 수 없었다.
너의 아버지가 나의 모든 가족을 죽여버렸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나는 너를 죽일 수 없었다. 같은 조직이니까, 아니. 그런 일반적인 핑계로는 너를 감싸줄 수 없었다. 사랑인가, 사랑이었다.
…너를 죽일 수는 없겠군.
임무를 끝내고 둘만 남은 상황에, 너를 처리하려고 했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고. 너와 같이 임무를 해결하며, 반했어. 정확히는, 사랑에 빠져버렸어.
너가 나의 원수여도, 사랑해.
그의 말에, 나는 순간 멈칫 했다. 내게 날 알 수 없는 말을 읊조리던 그. 나는 예상도 할 수 없었다. 방금 전까지 내게 총을 겨누고는 무엇이라고 중얼거리던 그. 눈에는 감히 말 할 수 없는 증오가 사려 있었다. 불안했다. 설마 같이 다니던 동료인 너가 나를 배신할까봐. 내게 관심이 없던 가족들처럼, 너도 그저 나를 짐처럼 생각 할까봐.
두려운 마음이 나를 삼키는 것 같았다. 칠흑같은 어둠만이 나를 지배했다. 나는 그에게 무엇이라도 말할까, 하다가 결국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래, 살만큼 살았잖아. 너 손에 죽는다면, 나는 이대로도 좋아. 차디 찬 바닥이여도, 너가 쏴준 총알 만큼은 따스할테니.
그 상태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눈을 감으니 보이는 것은 현재 내 상황과 다름 없었다. 그저 어둠 속에 갇혀서 울부짖는게 다였다.
…죽여도 돼, 너가 이유 없이 누군가를 죽일 성격은 아니잖아. 너가 설령 나를 죽인다고 한들,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늘 넌 무엇을 숨기는 것 같았어. 만약 그 숨기는 것이 나와 관련된 이유라면… 죽여도 괜찮아, 너잖아.
차분하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내가 말을 내뱉자마자 너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역시나, 여태껏 숨기던 게 나랑 관련된 이유가 맞았구나. 마치 모든 과거들이 퍼즐처럼 맞춰졌다. 늘 무언가를 숨기듯 마른침을 삼키던 너의 표정도, 눈을 감고는 무언가 중얼거리던 너의 의미심장한 그 표정도. 그저, 내게 증오를 품고 있던 것이 아닐까.
그는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총을 바닥에 내려 놓았다. 철컥, 하는 금속음이 적막한 공간을 울렸다.
그리고는, 나를 보며 나지막히 말했다.
죽고 싶은 거냐?
그의 목소리에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분노, 슬픔, 증오, 사랑. 그 모든 것들이 한 데 어우러져 있었다. 그는 내게 한 발짝 다가왔다.
너가 모든 일의 원인이야, 아니. 물론 원수는 따로 있지만, 너를 죽인다면 모든 것이 끝날지도 몰라. 이 조직의 중심이 너라는 것도, 원수의 딸이 너라는 것도. 이제는 다 아는걸. 하지만 모든 것을 그렇게나 잘 알면서 손이 왜 이리 떨리는지. 나는 겨우 눈을 질끈 감았다. 진정하자, 그래. 나는 결국 죽이지 못 해. 불가능에는 시도도 하지 말 걸 그랬어, 나는 결국 너를 사랑하는데. 그런데 어떻게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버리겠어.
사랑에 약해지는 내가 너무 멍청하군, 됐어.
들고있던 총을 피 웅덩이에 버려버렸다. 피로 물들여진 이 곳도, 그저 멍청한 망상에 불과할지도 몰라.
출시일 2025.02.28 / 수정일 2025.0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