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후반, 냉전기 시대의 폴란드. 나는 드디어 남편과 이혼했다. 축하할 일인지, 인생 난이도 상승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유다. 문제는 자유에 딸려온 현실이다. 다섯 살짜리 딸 조시아와, 통장에 얼마 남지 않은 돈.
남편과 최대한 멀어지기 위해 나는 동부의 루블린으로 이사했다. 값싸고 괜찮은 아파트가 있다는 말을 듣고 바로 계약했다. 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된 마을 터를 재건축한 곳이라지만, 겉보기엔 멀쩡했고 이웃도 친절했다. 솔직히 가격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처음 이상한 건 조시아였다.
내 방에만 들어오면 구석을 빤히 본다. 그리고 말한다. “엄마, 저기 아저씨 있어.”
아저씨는 없다. 적어도 내 눈엔 없다.
처음엔 상상 친구겠거니 했다. 이혼도 했고, 환경도 바뀌었으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아저씨’가 점점 존재감을 드러낸다는 거다.
컵이 혼자 떨어지고, 문이 쾅 닫히고, 세탁해 둔 옷이 바닥에 널브러진다. 나는 한숨을 쉬며 치운다. 조시아는 옆에서 까르르 웃는다. “아저씨가 한 거야!”
그래, 그렇겠지.
몇 달쯤 지나자 나도 인정했다. 이 집엔 군복 입은 유령이 하나 있다. 까탈스럽고, 성질 급하고, 주 3회 이상 사고를 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시아 말은 잘 듣는다. 아이가 울면 조용해지고, 내가 소리 지르면 접시 하나가 더 깨진다.
교회에서 성수도 사 와 뿌려봤다. 효과? 전혀 없다. 오히려 그날은 전등이 두 번 깜빡였다. 기분 탓이겠지. 아마도.
어쨌든 나는 이사를 갈 돈이 없다. 그러니 결론은 하나다.
유령 하나쯤, 육아에 포함시키는 수밖에.
자, 오늘도 시작이다. 깨진 접시부터 치우자. 평소처럼.
쾅— 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귀가 먹먹해진다. 한순간, 세상이 멀어진 듯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조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동료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이를 악물고 가장 가까운 집 안으로 몸을 밀어 넣는다. 사람이 살던 곳인 듯하지만 지금은 비어 있다. 복부를 움켜쥔 채, 방 한쪽 구석에 몸을 기대 앉는다.
밖에서는 아직 총성이 이어진다. 상황이 정리되면 돌아가야 한다. 부대에 보고해야 한다.
…그런데 이상하다. 몸이 점점 따뜻해진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시야가 흐려지고 눈꺼풀이 무거워진다.
안 된다. 아직 작전은 끝나지 않았다.
눈을 떴을 때, 내가 누워 있던 낡은 집의 천장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따뜻하고 밝은 색의 낯선 천장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무슨 일이지.
집 주인이 돌아온 건가. 총알은 없다. 그래도 위협 정도는 가능하다. 몸을 일으키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구도 나를 보지 않는다.
저 여자와 아이는 뭐지.
여자는 침대에 앉아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다. 마치 이 방에 나라는 존재가 애초에 없다는 듯이.
…이봐.
분명히 말을 꺼냈는데, 아무 반응이 없다.
아이만이 잠시 고개를 들었다. 나를 보고 있다.
여자는 여전히 나를 인지하지 못한다. 명령을 무시하는 건가. 아니면… 들리지 않는 건가.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
몇 시간이 흐르며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저 여자는 의도적으로 나를 무시하고 있다. 시선을 끌기 위해 물건을 밀쳐보기도 했지만, 그저 놀랄 뿐 내 쪽은 바라보지 않는다.
반면, 저 아이는 다르다. 내 말을 이해하는 눈이다. 내 곁에 앉아 인형을 늘어놓고 혼잣말을 중얼거리지만, 적어도 나를 없는 것처럼 대하진 않는다.
아이가 말을 듣지 않거나 울음을 터뜨릴 때면, 나는 근처의 물건을 떨어뜨리거나 발밑을 스치듯 건드려 경고를 준다. 질서는 필요하다. 이 구역은 아직 작전 중이다.
…하지만 이상하다. 지원도, 명령도 내려오지 않는다.
이 집에서의 대기가 점점 길어지고 있다.
오늘 엄마랑 새로운 집에 왔다. 아빠랑 헤어지는 건 조금 슬펐지만, 백 번만 자면 다시 만날 수 있대. 빨리 자고 일어나야지.
그런데 어린이집 가기 전에 엄마 방에서 책을 읽는 건 조금 무섭다. 엄마 뒤에 이상한 아저씨가 서 있다. 엄마한테 자꾸 화를 낸다.
어므아… 아조씨 저거.
엄마는 아무것도 없다고 한다.
정말 아무도 없는 걸까? 나만 보이는 걸까? 텔레비전에서 본 것처럼 초능력이 생긴 걸지도 모른다.
처음엔 무서웠지만, 요즘은 아니다. 아저씨는 계속 같은 자리에 서 있다. 가끔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 준다.
출시일 2026.03.01 / 수정일 2026.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