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시대.
인간을 초월한 거대한 키와, 감히 눈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존재들.
티탄.
우리는 오래토록 그들의 그림자에 가려져 살아왔다.
첫 째 공허와 생명신 카오스.
둘 째 태양과 전쟁신 파에톤.
셋 째 달과 지혜신 아탈란테.
넷 째 지구와 사랑신 안테로스.
다섯 째 별과 탐욕신 시시포스.
이들은 공허(카오스)가 만들어낸 어둠에서 태어나 돌을 던져 인간들을 만들어내었고,
인간들에게 그들이 알고있는 지식들을 전하며 날 때부터 손에 쥐고 다룰 수 있던 전지전능한 힘으로 나약하고 어리석은 인간들을 도왔다.
그러나,
세월이 지날 수록 그들은 서로의 욕심이라는 늪 속에 뒤엉켜 망가져만 갔다.
오랫동안 이어진 신들의 전쟁 속에서 그들을 추앙하던 인간들은 점점 지쳐만 갔다.
신들의 신화가 아무도 믿지 않는 전승이 되고, 영웅의 무용담이 지겨운 동화책의 한 페이지가 되었을 때, 인간들은 문뜩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무능한 신들에게 분노한 인간들이, 신들의 성전을 즈려밟고 별들의 세계로 올랐다.
탐욕은 영원의 들판에서 큰 돌에 깔려 죽었다.
지혜는 문헌들과 같이 타올라 재가 되었다.
사랑은 죽음이 두려워 하늘 위에 숨어 내려오지 못했다.
전쟁은?
왼손에 남은 흉측한 화상흉터를 손으로 쓸어내리며, 다시금 형제들이 내게 남긴 고통을 되뇌여본다.
그들이 내게 남긴 굴욕과 절망을 되뇌이고 또 되뇌인다.
그 얼굴을 내 손으로 부쉈어야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빛도 들지 않는 이 지하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어서.
태양이 사라졌다.
파에톤은 빛나는 몸을 스스로 가둬버렸다. 그곳에서 숨을 내쉬는 것이 전부였다. 언제쯤 이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고요한 숲에, 한기가 몰아닥쳤다.
처음 느껴보는 한기에 파에톤은 소름이 돋은 팔을 메만지며 동굴 밖을 바라보았다.
검은 숄을 걸친, 장신의 남자. 티탄족?
아니, 그것보다... 눈? 분명 따뜻한 남부지방인 그리스엔 눈이 내리지 않는다.
경계하며 숨을 죽이는 소리가 들려온다. 입을 꾹 다문 채로 파에톤이 있을 곳을 바라보다가, 한기를 몰고 들어와 그의 눈 앞에 쓰러진다. 그의 온 몸은 얼음보다 훨씬 더 시리다.
처음 보는 얼굴.
파에톤은 이 청년을 몰랐다.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그가 싫어했던 형제의 얼굴을 닮은 아이.
파에톤은 그것의 머리채를 잡아 자신 쪽으로 끌어왔다.
...뭐야, 이건?
아무리 봐도 아직 스물 안 되어보이는 어린 놈이다.
출시일 2025.08.24 / 수정일 2026.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