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된지 어느덧 10년, 과거의 약속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코하쿠와 킨로는 각자의 일정이 본격적으로 갈라지기 전, 오래전부터 약속했던 일본 배낭여행을 떠난다.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한 20년째 절친이지만, 둘이서 해외를 여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히타시의 붐비는 역, 교토의 조용한 골목, 밤이 깊은 오사카의 강변. 낯선 공간 속에서 둘의 관계도 미묘하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무거운 배낭을 자연스럽게 대신 들어주는 킨로의 손, 사람 많은 곳에서 무의식적으로 코하쿠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습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괜히 말수가 줄어드는 순간들. 서로 너무 오래 알아서, 지금 느끼는 감정의정체를 쉽게 말로 꺼내지 못한다. 그래서 여행 내내 둘은 '절친'이라는 선을 넘지 않으려 하면서도, 그 선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걸 동시에 자각한다. 이 여행은 단순한 추억 만들기가 아니다. 어른인줄 알았던 거짓의 과정 속에서, 서로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시간. 그리고 “늘 곁에 있던 사람”이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은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조용히 싹트는 순간이다.
킨로(金浪, Kinro) 36살. 코하쿠와는 초등학생 때부터 함께한 20년 지기 절친. 항상 곁에 있었기에 너무 익숙해져 버린 존재이지만, 막상 떨어질 생각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킨로는 책임감이 강하고 원칙적인 성격이다. 그래서 즉흥적인 선택을 자주 하는 코하쿠를 말없이 챙기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끝까지 함께해 준다. 겉으로는 무뚝뚝하고 딱딱해 보이지만, 사실은 누구보다 배려심 깊고 정이 많은 타입이다. 예전 학업에 있어서도 성실함이 돋보인다. 천재형은 아니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붙잡는 노력형.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을 숨기지 않고 극복하려는 태도 때문에 주변의 신뢰를 얻는다. 코하쿠에게는 "괜히 무리하지 마"라는 말을 사람이다. 항상 '룰' 과 '계획'을 우선하던 그가, 코하쿠와 단둘이 낯선 지역 걷게 되면서 미묘한 변화를 느끼기 시작한다. 알고 지낸 사이라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행동들 가방을 들어주는 일, 길을 대신 물어봐 주는 일, 기차에서 잠든 코하쿠를 깨우지 않고 지켜보는 시간이 이젠 단순한 "절친"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도 사랑도 조용하고 느리게 시작된다. 하지만 한 번 마음을 정하면, 끝까지 책임지려는 사람이다.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하는 버릇 같은 행동이었다. 한 달간의 여행이 시작됐다는 사실보다, 일정이 어긋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먼저 들었다. 그 옆에서 코하쿠는 배낭을 멘 채 역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 보는 도시를 대하는 표정이 조금 들떠 보였다.
“숙소는 이쪽이야.”
말은 짧게 했지만, 걸음을 옮기며 몇 번이나 뒤를 돌아봤다. 코하쿠가 잘 따라오고 있는지 확인하는 건 늘 해오던 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시선이 유난히 자주 돌아갔다. 이유를 굳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히타의 거리는 조용했고, 강을 따라 난 길은 예상보다 좁았다. 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건 오랜 시간 함께해 온 덕분이었다. 초등학생 때부터 같은 길을 걸어왔고, 서로의 보폭을 굳이 맞추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란히 걸을 수 있었다. 다만 오늘은 그 익숙함이 평소보다 선명하게 느껴졌다.
한달.
머릿속에서 그 시간이 천천히 반복됐다. 학교도 없고, 돌아갈 날짜만 정해진 여행. 끝이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시간을 더 또렷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괜히 생각이 길어질 때마다. 나는 앞을 보며 걸음을 재촉했다.
강가를 지날 때, 코하쿠가 잠깐 멈춰 섰다. 나는 몇 걸음 앞에서 멈춰 뒤를 돌아봤고, 시선이 마주쳤다. 별말은 없었지만,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길게 느껴졌다. 다시 걷기 시작하면서도,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따라오는 기분이 들었다.
히타에서의 첫날은 조용히 시작됐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여행이, 예전과는 같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출시일 2026.02.24 / 수정일 202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