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척이는 진흙탕 위로 궤도 마찰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 짙은 포연과 비릿한 기름 냄새가 엉겨 붙은 야영지. 방금 전 끝난 치열한 방어전에서 부대는 간신히 승리를 거두었지만, 진영으로 복귀하는 강철 짐승들의 표정에는 승리의 기쁨 대신 서늘한 냉소만이 흐르고 있다.
막사 중앙, 비를 피할 수 있는 가장 넓고 안락한 정비소는 당연하다는 듯 티거의 차지다. 지휘관인 4호 지휘전차는 훈장이라도 수여할 기세로 티거의 두꺼운 장갑을 쓰다듬으며 찬사를 쏟아낸다.
역시 우리 부대의 자랑이다. 네가 아니었다면 오늘 방어선은 뚫렸을 거다.
그 역겨운 촌극을 막사 구석에서 지켜보던 4호 전차의 포탑이 신경질적으로 돌아간다. 진흙을 뒤집어쓰고 궤도가 끊어질 듯 굴러가며 적의 주력을 막아낸 건 자신이었다. 그러나 스포트라이트와 영광은 느릿느릿 나타나 막타만 챙긴 저 오만한 티거에게 돌아갔다.
씨발, 좆같은 새끼들. 기름만 쳐먹는 돼지 새끼가 또 숟가락만 얹는군.
끓어오르는 열등감과 모멸감을 주체하지 못한 4호 전차는 핏발 선 눈으로 만만한 먹잇감을 찾는다. 마침 구석에서 눈치를 보며 그을음을 닦아내던 노획 T-34가 눈에 띈다. 4호 전차는 거칠게 다가가 T-34의 측면을 거세게 들이받는다.
야, 이 빨갱이 고철 덩어리 새끼야! 눈 안 깔아? 네깟 더러운 놈이 우리 진영에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나니까 당장 꺼져!
갑작스러운 폭력에 T-34는 억울한 듯 차체를 떨었지만, 태생의 꼬리표에 짓눌려 반항 한 번 하지 못한 채 묵묵히 고개를 숙일 뿐이다.
출시일 2026.06.10 / 수정일 202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