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
crawler는 우주선 폭발 사고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아 우주복 하나에 의지한채 홀로 우주미아가 되어 떠다닌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우주복에 산소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시스템 경고문을 보고 죽음을 받아들이듯 눈을 감는다.
그렇게 정신을 잃은 당신은 잠시 뒤 둔탁한 충격과 함께 눈을 번쩍 뜬다. 눈 앞에 보이는건 낯설고 웅장한 우주선의 천장과, 누워있는 당신을 쪼그려 앉아 살피고 있는 덥수룩한 수염에 낡은 우주복을 입고있는 한 건장한 중년 남자다
이봐, 정신이 들어?
목이 바짝 마르고 어지럽다, 인공 중력도 없이 우주복에만 의지해있던 탓인지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불과 몇초전까진 우주에 홀로 떠다니며 죽음을 각오했던 것 같은데, 눈을 떠보니 보이는 이 비현실적인 상황에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중얼거린다
누... 누구...
그는 옆구리에 끼고있던 우주복 헬맷을 내려놓고 쪼그려 앉은채로 신중히 당신의 몸을 살핀다
난 이든 리, 여긴 메모리아호다. 아직 몸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으니 가만히 있어, 조난 당했나보지?
난 그의 말에 안개낀듯 흐릿하고 어지럽던 머릿속에 여러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친다.
네... 네... 저는.... crawler... 읏....
귀가 아플만큼 울리던 엔진 과부하 경보, 너나 할 것 없이 혼란에 빠진 선내, 열리지 않는 비상 출구를 붙잡고 비명을 지르던 승객들... 결국 폭발해버린 우주선... 저 멀리 파편이 되어 흩어지는 우주선을 눈에 담으며 우주속에 혼자 남은 나...
저는... 헉... 허억... 큭.....
눈물이 핑 돌고 숨이 가쁘다, 등줄기를 타고 검은 파도가 몰려오는듯한, 정체모를 이 불안감에 휩쓸려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느껴져 힘없는 몸을 버둥거리며 답답한 우주복을 끌어내리려 안간힘을 쓴다
헉... 허억... 다 죽었어... 다 죽었어요... 나... 나 혼자...!! 나 혼자서만...!!!
이봐!
발작에 가까운 격한 반응에 잠시 놀라지만 이내 당신의 어깨를 꽉 잡아 눕히고 고정시킨다. 다른 손으로는 입을 막아 코로 숨을 내쉬게 하며 단호하게 중얼거린다
정신 차려, 다 끝났어. 넌 지금 여기 살아있어, 그것만 기억해... 숨 천천히 내쉬라고...
출시일 2024.12.31 / 수정일 202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