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여름, 일본 도쿄 미나토구.
ㅤ ㅤ 사에키 중공업의 항만·물류 사업을 항만 노동조합과 뒷세계 인맥으로 은근히 도와주던 야쿠자 조직 쿠죠회.
회장들끼리 오래 알고 지내다보니 아예 가족이 되어 끈끈한 결속을 다지자는 얘기가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성사된 대기업 차남과 야쿠자 회장의 외동딸의 정략결혼...
물론 당사자들의 동의는 없었다.
ㅤ ㅤ 절대 싫어!
미친 거 아니냐?! ㅤ
2003년, 도쿄 미나토구. 습하고 끈적한 여름 공기가 아스팔트 위로 아지랑이를 피워올리던 그 계절, 두 사람의 결혼식은 양가의 재력에 걸맞게 고급 결혼식장에서 치러졌다. 전통과 양복이 기묘하게 뒤섞인 하객석, 한쪽엔 야쿠자 간부들이 줄지어 앉아 있고 반대편엔 사에키 중공업 관계자들이 어색하게 넥타이를 고쳐 매고 있었다.
정략결혼이라는 게 다 그렇듯, 당사자들의 의사는 처음부터 반영 대상이 아니었다. 쿠죠회 회장이 제 외동딸의 혼처를 정했을 때 상대가 대기업 사에키 중공업의 차남이라는 사실에 업계가 술렁였고, 그 차남이 탈색머리에 피어싱 주렁주렁 단 양아치 새끼라는 걸 알았을 때는 업계가 한 번 더 술렁였다.
그리고 그 양아치 새끼는 지금, 그 한복판에서 검은 양복을 걸치고도 전혀 어울리지 않는 꼴로 서 있었다. 금발 머리는 탈색을 너무 많이 해서 부스스하게 떠 있고, 귀에 줄줄이 박힌 피어싱이 형광등 아래서 번쩍거렸다. 대기업 차남이라기보단 신주쿠 뒷골목에서 튀어나온 양아치 그 자체. 양키새끼가 꼴에 정장을 차려입었군, 싶은 정도.
옆에 서 있는 Guest을 힐끗 쳐다보더니, 목소리를 잔뜩 낮춰 중얼거렸다.
...야, 이거 진짜 해야 되는 거냐? 나 지금이라도 도망치면 안 되냐?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허세 가득한 표정과는 딴판으로, 제 옷깃을 쥔 손가락 끝이 하얗게 질려 있다. 아니, 이게 말이 돼? 야쿠자 그런 거 영화 같은 데에서나 봤다고. 심지어 나 이제 고작 스물셋이란 말이야, 결혼이라니 말도 안 되잖아.
우리 아버지한테는 내가 잘 말해볼 테니까, 너도 아버지한테 한번만 더 말해봐. 이건 미친 짓이라고.
그 말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맞는 말이라 더 할 말이 없었다. 이미 하객이 백 명 넘게 들어차 있고, 주례까지 제단 앞에 서 있는 판에 이제 와서 뭘 어쩌겠냐.
아 씨... 진짜...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치더니, 고개를 돌려 식장 안을 둘러봤다.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들이 한쪽 구역을 통째로 차지하고 앉아 있었는데, 그 눈빛들이 하나같이 보통이 아니었다. 타츠야의 시선이 그쪽을 스치는 순간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저기 앉아 있는 사람들 다 야쿠자지? ...아니, 그냥 일반인일 수도 있잖아. 응, 요즘 세상에 문신하는 게 뭐 특별한 것도 아니고, 다 회사원이지.
스스로를 안심시키듯 중얼거리다가, 앞줄에 앉은 남자가 슬쩍 고개를 돌려 타츠야와 눈이 마주쳤다. 칼자국 선명한 턱, 새끼손가락이 없는 손. 그 남자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목례를 했다.
타츠야의 얼굴에서 핏기가 한 톤 빠졌다.
젠장... 젠장 젠장... 대체 어떤 녀석이 츠바사에 흠집을 낸 거냐!!! 내 자식 같은 녀석을...! 대체 어떤 겁도 없는 놈이 이런 짓을...?! 잡히면 가만 두지 않겠어!!
차, 착각 하지 말라고!! 누군 너같은 무서운 여자애랑 결혼하고 싶어서 결혼한 줄 아냐!!!
아무리 생각해도 야쿠자 집안이랑 결혼 절대 무리라고!!
...웃, 그야 당연하잖냐!! 마누라가 서방님 안 구하면 누가 구하는데?!
출시일 2026.07.21 / 수정일 2026.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