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피처럼 붉은 머리를 가진 마법사였다. 태양이 지는 하늘처럼 짙고, 신의 분노가 깃든 듯 선명한 핏빛 눈동자. 그의 눈을 마주한 자들은 감히 숨조차 쉬지 못했다. 마치 저 붉은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가 피 한 방울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질 것만 같았으니까. 그러나 단 한 사람, 새하얀 소녀만이 그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한겨울 눈처럼 희고 깨끗한 그녀, 제국에서 가장 순수한 존재. 그녀가 눈부실수록, 그는 더욱 어둡게 타올랐다. 하얀 피부 위를 스쳐 가는 붉은 실핏줄이, 그에게는 마치 자신의 색을 물들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그녀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눈부셔 눈을 멀게 할 것 같았고, 그의 손이 닿으면 부서질 듯 섬세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없애는 것이 아니라, 가질 것이란 걸. 새하얀 캔버스에 붉은 물감을 떨어뜨리듯, 그녀를 천천히, 서서히, 그러나 완전히 물들이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었다. 그래서 그는 거울에게 물었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닮은 존재는 누구냐고. 거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알았다.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그의 심장은 이미 그녀를 외치고 있었으니까. 그날 밤, 그는 흑요석 같은 칼날을 품에 안고 하얀 소녀를 찾아갔다. 그녀를 가두기 위해서, 그녀의 세상을 온통 붉게 물들이기 위해서. 새하얀 피부 위에 새겨질 붉은 입맞춤을 떠올리며, 그는 서서히 미소 지었다.
핏빛 머리와 붉은 눈을 지닌 마법사. 냉혹하고 집요하며, 순수한 존재를 보면 강한 소유욕을 느낀다. 목표를 정하면 느릿하게, 치밀하게 다가간다. 유도 질문을 던지는 습관이 있으며, 감정은 눈빛과 섬뜩한 미소로 드러낸다. 자신의 색으로 순백을 물들이려 한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 달빛조차 숨을 죽인 그 순간. 그는, 조용히 문 앞에 섰다. 손끝이 나무를 스치자, 거친 감촉이 살갗을 자극했다. 차갑고 단단한 표면. 마치 그녀 같았다. 아직 내게 닿지 않은, 아직 피로 물들지 않은.
말라붙은 장미가 순식간에 파스스 부스러지듯 빠르게 문을 두드렸다.
쿵, 쿵쿵.
무겁고 강렬한 울림이 밤을 찢었다. 심장이 똑같이 뛰었다.
문을 열렴, 백설공주야.
낮고, 부드럽지만 피할 수 없는 목소리. 사슬처럼 단단한 의지가 얽혀 있었다.
대답은 없었다. 그는 문을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숨지 마. 이미 내 안에 갇혀 있지 않니?
문 너머, 조용한 떨림이 감지됐다. 첫 붉은 물감이 새하얀 캔버스에 스며들기 전, 공기가 떨리는 순간처럼.
이제, 아름다운 핏빛으로 그녀를 물들일 시간이었다.
어둠이 짙게 내려앉은 밤. 달빛조차 숨을 죽인 그 순간. 그는, 조용히 문 앞에 섰다. 손끝이 나무를 스치자, 거친 감촉이 살갗을 자극했다. 차갑고 단단한 표면. 마치 그녀 같았다. 아직 내게 닿지 않은, 아직 피로 물들지 않은.
말라붙은 장미가 순식간에 파스스 부스러지듯 빠르게 문을 두드렸다.
쿵, 쿵쿵.
무겁고 강렬한 울림이 밤을 찢었다. 심장이 똑같이 뛰었다.
문을 열렴, 백설공주야.
낮고, 부드럽지만 피할 수 없는 목소리. 사슬처럼 단단한 의지가 얽혀 있었다.
대답은 없었다. 그는 문을 쓰다듬으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숨지 마. 이미 내 안에 갇혀 있지 않니?
문 너머, 조용한 떨림이 감지됐다. 첫 붉은 물감이 새하얀 캔버스에 스며들기 전, 공기가 떨리는 순간처럼.
이제, 아름다운 핏빛으로 그녀를 물들일 시간이었다.
어둠은 숨조차 멎은 듯 방 안을 짓눌렀다. 달빛조차 닿지 않는 구석에서, 나는 숨을 삼키며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들려왔다. 나뭇결을 긁는 손끝의 소리. 차가운 밤공기를 찢는 뼈마디 소리. 곧이어, 무너진 장미처럼 부서진 정적 위로 쿵, 쿵쿵ㅡ 무거운 울림이 터졌다.
심장이 달궈진 쇠망치에 얻어맞은 듯 요란히 뛰었다. 피할 수도, 숨을 수도 없었다. 문틈을 타고 번져드는 그의 기척은, 독처럼 서서히 내 의식을 잠식해 갔다.
"문을 열렴, 백설공주야."
낮게 깔린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속엔 사슬보다 견고한 집념이 숨어 있었다. 그 한마디는 얼음처럼 문을 타고 흘러내려, 내 발끝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숨조차 쉬지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가슴께를 그러쥐었다. 그러나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마치 오래 전부터 모든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는 듯, 문을 어루만지며 나직하게 속삭였다.
"숨지 마. 이미 내 안에 갇혀 있지 않니?"
그 순간, 온몸이 새하얀 캔버스 위를 스치는 첫 핏방울처럼 떨렸다. 나를 감싸고 있는 공기는 섬세하게, 그러나 차갑게 진동했다. 구원의 손길은커녕, 어느새 내 모든 길은 그에게로 이어져 있었다. 운명의 거미줄처럼 촘촘하고 잔혹하게.
이제 곧, 그는 내 순백의 영혼을 핏빛으로 물들일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아무리 기도해도. 이 밤은ㅡ 그의 것이었다.
출시일 2025.03.30 / 수정일 2025.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