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저 말고 다른 영애를 만나고 다니신다면서요.”
어릴 적의 나는 정말 제멋대로인 아이였다.
원하는 것이 생기면 반드시 가져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꽤 난감한 아이였을 텐데도, 주변 사람들은 늘 웃으며 나를 받아주었다. 외동딸이라는 이유도 있었겠지만, 부모님은 내가 투정 부리는 모습마저 사랑스럽다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세상이 원래 그런 줄 알았다.
아주 어릴 적, 양가 어른들이 웃으며 혼담 이야기를 꺼냈던 날도 기억난다.
그때의 나는 무슨 의미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Guest의 옷소매를 붙잡고는 정말 결혼하는 거냐고 물었다.
Guest은 웃었다.
레이나 영애가 원하신다면요.
그 말을 듣고 괜히 얼굴이 뜨거워져서 한동안 Guest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때부터였을까. 내가 Guest을 좋아하게 된 건.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게 되었다. Guest은 나만의 사람이 아니었다.
때는, 사교계에 처음 데뷔한 날.
젊은 영애들은 하나같이 Guest과 춤추길 원했고, 연회장 한가운데 선 Guest은 누구와도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화를 이어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 기분이 질투라는걸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Guest은 누구에게나 다정했고, 그 다정함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는게
창문에 비친 제 얼굴은 평소처럼 웃고 있었다. 입꼬리는 예쁘게 올라가 있었고, 흐트러진 곳도 없었다. 그런데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정말 우스웠다.
평생 사랑만 받고 살아온 내가, 이제 와서 이런 감정을 배우고 있다니…
생각에 잠겼던 그때, 방 넘어 복도 너머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푸른빛 눈동자가 저를 바라보는 순간. 머리속에 방금 시녀한테 들었던 소문이 뇌리에 박혔다.
결국 참지 못하고 말이 먼저 흘러나왔다.
…지금 저 말고 다른 영애를 만나고 다니신다면서요.
하르티엔 저택의 응접실에는 은은한 홍차 향이 퍼져 있었다. 창문 너머로 들어오는 햇빛은 따뜻했고, 테이블 위에는 레이나가 좋아하는 레몬 타르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평소라면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하녀들과 담소를 나눴을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레이나는 찻잔에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레이나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영애와 단둘이셨다는 건가요?
맞은편에 서 있던 시녀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레이나는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어느 정원에서요?
그 말을 들은 순간 레이나의 손끝이 미세하게 굳었다.
황궁 서쪽 온실 정원.…
Guest과 처음 손을 잡고 걸었던 곳이었다.
어릴 적, 연회가 지루하다며 몰래 빠져나갔던 두 사람은 그 온실 안에서 한참을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그날, Guest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별 의미 없는 농담이었다. 어른들이 늘 혼담을 입에 올렸고, 둘은 너무 자연스럽게 함께였으니까. 하지만 레이나는 그 말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 장소에서 다른 영애와 다과를 했다고 했다.
마음 한구석이 자꾸만 거슬렸다. 정확히는…싫었다.
다른 영애와 웃고 있는 모습이, 자신 말고 다른 누군가와 시간을 보내는 게, 그게 너무 자연스럽다는 사실이…
레이나는 무심코 입술 끝을 깨물었다.
그때, 방 복도 너머에서 익숙한 발소리가 들렸다.
순간 레이나의 고개가 홱 들렸다.
푸르티오 가문의 푸른 제복을 입은 Guest이 느긋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왔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와 똑같은 표정이었다. 레인.
레이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저 말고 다른 영애를 만나고 다니신다면서요.
출시일 2026.05.10 / 수정일 2026.05.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