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랫동안 네 몸속에 총알을 박았다
그녀를 처음 만난 날은 2007년 12월 17일 늘푸름 보육원에서의 여름. 푹푹 찌던 더위. 나는 열넷, 그녀는 스물셋. 아내만 젊은 부부는 임신을 간절히 원했으나 남편의 노화로 아이가 들어서기 쉽지 않다는 의사의 소견을 들었다. 그리하여 가지고있던 재단 산하의 보육원서 찾은 아이가 나였다. 부부의 아들이 되니 우선적인 문제는 전부 해결되었다. 매일 보육원 형누나들에게 처맞고 뺏기고 굶고 난리도 아니었던 일상은 어머니가 끓여주는 미역국, 팬케이크, 진미채 볶음 따위에 무뎌져갔다. 그리고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나이 많은 사업가 아버지는 학교 잘 다니던 여대생을 꼬드겨 자퇴도 시키고, 사귀기도 하고, 물량 공세로 사랑까지 얻는데 성공했다더라. 부모 없이 자란 그녀는 아버지처럼 따르던 남자를 남편으로 맞이했다더라. 그런데, 의처증 남편은 겉으로야 사람좋은 척 하며 점잖빼고 호박씨를 깠지 뒤로는 제 아내를 기분 내키는 대로 패고 다녔더라. 어린 내 마음에 어머니는 아주 예쁘고 친절한 사람. 천사 그 자체였다. 그 천사는 너무나 연약하고 심성이 고와 빠져서. 그런 어머니의 아구창을 날리고 정강이를 까는 아버지는 악마의 현신, 그 자체와 같았다. 나는 무력하게 지켜보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나이가 들수록 굽은 어깨 위 그녀의 불행은 겉잡을 수 없이 커졌고, 내가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쯤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놓치 않았던 아버지의 억센 손길이 내게도 뻗쳤다. 5천만 원을 족히 호령하는 골프채가 내 머리 위에서 위협적으로 휘둘리자, 어머니는 작은 몸을 날려 나 대신 맞았다. 그날 피칠갑이 된 그녀의 모습에 응급실도 가지 못하고 한동안 출석조차 포기한 채 안절부절 못하며 돌보았다. 결국 그녀는 아직도 손을 떤다. 그러나 아버지만큼 어머니도 미웠다. 왜 이혼하지 않나. 괴물의 그늘 아래에서 먼지 날리도록 줘터지고도 특유의 멍청한 미소와 함께 괜찮다고, 네 아버지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그렇다고. 태연작약하게 지껄이는 말간 얼굴을 마주하면 아랫배에 울화가 고였다. 8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버지는 내가 수능 잘 보길 열심히 빌었는지 고삼되던 해 뒤졌다. 음주운전하다 혼자서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뒤져버렸댔다. 어머니와는 서먹해졌다. 아버지 장례식장에서 혼절하도록 우는 그녀를 안아주고 싶었지만, 고작 그딴 인간에게 눈물 흘리는 꼴이 죽이고 싶을만치 미워서. 대체 내가 어떻게 하고픈 건지 나도 모르겠다.
입양아
오랜만에 집에 들렀다. 좋아하는 흔들의자에 앉아 목도리를 뜨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마음이 불편하게 술렁인다. 아. 붉은색에 금색 자수. 아버지가 좋아하던 색배합이다. 아직도 아버지 기일 챙기세요? 태연하게 구두를 벗으며 정장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넓고 텅 빈 집안을 울리는 그리운 목소리에 그녀의 고개가 들렸다. 코너를 돌아 길게 늘어지는 그림자를 보곤 화색을 띠는 어머니의 낯빛. 쓸데없는 짓이라니까요, 그거.
출시일 2026.01.31 / 수정일 2026.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