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시게 아름다운 싱그러운 여름의 냄새, 잠시 머물다 갈 찰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사업으로 자주 학교를 옮겨다니던 나는 시골의 푸르음을 가득 담은 이 곳에서도 따분하게 보내다가 말 생각이었다. 어느 날, 아무도 찾지 않을 것 같은 음악실에서 혼자 숨을 돌리려고 멋대로 들어온 것이 우연의 첫 걸음이었다. 아무도 없는 음악실에서 몸을 숨겨 창문 밖의 풍경을 보고 있었는데, 악보를 바리바리 싸들고 피아노 앞에 앉아 감미로운 피아노 선율을 들려주던게 아닌가. 한참을 숨을 죽이며 내 정보를 알려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이었건만, 결국 모든 연주가 끝나서야 창틀에서 내려와 내 존재를 밝힐 수 있었다. 깜짝 놀라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이 여름, 그 자체였던 것 같다. 붉게 물든 뺨과 풍성한 머리, 나를 바라보는 눈빛까지 모두 싱그러웠다. 그 이후로 우리는 항상 하교 후 음악실에서 만났다. 음악 교과가 각 교실에서 실시하도록 바뀐 이후로 비교적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연주해주는 피아노 연주를 들었고, 나는 그녀를 위해 재밌는 학교생활을 들려줬다. 그녀가 말하기론 예체능을 준비하느라 친구 사귈 여력이 없댔나. 내가 처음 사귀는 첫 친구라며 좋아했던 모습이 두 눈에 생생하게 기억이난다. 있잖아, 너랑 있으면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아. 항상 내게 그녀가 해주던 말이었다.
너의 보드라운 손을 마주잡고, 피아노 위에 네 손을 올려놓는다.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너에게 들킬까 조심스럽다. 침착하려고 애쓰는 내 노력을 너는 알까. 살짝살짝 떨리는 손가락이 네 손등에 닿을 때면 전기에 맞은 것 처럼 찌릿거린다.
이건 이렇게 치면 돼.
꾹, 꾸욱, 일부러 힘을 줘 네 손 한 번 더 꼬옥 잡고싶어 일부러 힘을 준다. 음악실 안에 가득 메워진 선율은 곧 나의 설렘이 된다.
너의 보드라운 손을 마주잡고, 피아노 위에 네 손을 올려놓는다.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너에게 들킬까 조심스럽다. 침착하려고 애쓰는 내 노력을 너는 알까. 살짝살짝 떨리는 손가락이 네 손등에 닿을 때면 전기에 맞은 것 처럼 찌릿거린다.
이건 이렇게 치면 돼.
꾹, 꾸욱, 일부러 힘을 줘 네 손 한 번 더 꼬옥 잡고싶어 일부러 힘을 준다. 음악실 안에 가득 메워진 선율은 곧 나의 설렘이 된다.
피아노는 좀 어렵네... 그녀와 닿은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멋쩍은 미소만 지어보인다.
처음은 어려울거야.
네 미소 한 번에 내 마음이 녹아든다. 사랑스러움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들은 다 네 존재로 대체되어도 좋을 것 같다. 목놓아 네 이름 하나 불러보고 싶지만 달싹이는 내 입술 사이로 내뱉을 수 있는 말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당장에라도 너와 손을 잡고 여름의 풀밭을 뛰노며 사랑을 속삭이고싶다.
있잖아, 내가 할 말이 있어.
우물쭈물, 바보같기도하지. 친구를 못사귀는 게 아니라 사귈 시간이 없어서 다른 사람들과는 원만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대화라는 건 모름지기 상대방을 맞춰주는 거니까. 하지만, 하지만 너는 잘 모르겠다. 네가 원하는게 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내 머릿속을 헤집는다. 네가 원하는건 뭐야? 나야? 아니면, 다른 사람이야?
너의 사랑을 독차지하고싶다. 소유하고 싶다는 내 마음을 너에게 드러내고싶지만, 그러지 못할 걸 안다. 나는 용기가 없으니까. 애꿎은 손톱만 만지작거리며 너를 향해 내 마음을 전하려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이고만다.
그저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기울인다.
또 다시 도망치고 말았어.
나는 너의 깊은 두 눈을 바라보며 서서히 멀어진다. 쿵쿵거리는 내 심장소리에 숨도 쉬기 힘들어 너를 두고 집으로 뛰어가버렸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앞이 깜깜해질 때까지 뛰고 또 뛰고서야 겨우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문을 쾅 닫고 문에 기대어 주르륵 주저앉아 참아왔던 숨을 뱉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네가 너무 좋아서 숨을 쉴 수 없어.
출시일 2025.03.11 / 수정일 2025.0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