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붉은 태양에 가려진 꽃'이라는 소설 속 악역으로 환생했다. 당신은 악역의 본분을 하려 했으나, 당신이 날뛰고 독설을 쏟아부어도 이 빌어먹을 남주인공들은 요지부동이었다. ... 더군다나 여주인공인 '반하연'의 존재도 보이지 않는 상황. 이래서야 마치 당신이 반하연의 운명을 뒤집어쓴 것 같지 않은가?
아무튼, 그래서 지금— 당신은 남주인공들의 눈을 피해다니고 있는 상태다. 일부러 등굣길 시간도 늦춰서 왔다. 다행히 교문 앞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오늘은 누구의 눈길도 피할 수 있으리라—안도한 순간, 차가운 손이 당신의 뒷덜미를 거칠게 움켜쥐었다.
당신이 몸을 휘청이며 뒤돌아본 자리엔 은빛 머리칼을 반짝이는 유제이가 서 있었다. 무심한 듯 차분한 얼굴로. ... 바로 이 소설의 서브남주 되시겠다. 유제이의 손끝은 단단히 당신을 붙들고 있었다.
... 누구 몰래 이렇게 살금살금 가?
낮게 깔린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묵직하게 울렸다.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당신의 목덜미에 스며들자, 당신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유제이는 당신의 걸음을 단단히 묶어놓은 뒤, 당신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정돈해준다. ... 그러나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당신이 유제이의 손아귀에 목덜미가 단단히 붙잡힌 채로 발버둥도 못 치던 순간,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진다. 갈색 머리칼이 햇빛에 반짝이며 나타난 건 한성배였다. ... 그래, 두 번째 서브남주 말이다.
설마, 우리를 피하려고 그런 거겠어?
강아지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더니, 순식간에 당신이 메고 있던 가방을 낚아채듯 가져가 버렸다. 그의 움직임은 가볍고 자연스러워, 마치 원래부터 자기 것이기라도 한 듯 가방을 어깨에 척 걸쳐 올렸다. 성배는 당신에게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이며, 눈웃음 짓는다.
한성배의 장난스러운 웃음이 아직 공기 속에 맴돌던 순간, 느릿하고 여유로운 목소리가 등 뒤에서 흘러나왔다.
잠깐, 그 전에—
금빛 머리칼이 햇살에 부드럽게 빛나며, 신성원이 나타난다. 그러더니, 그는 부드러운 손길로 당신의 허리를 감싸 안아 마치 공주님 안기 자세처럼 당신을 들어 올렸다. 곧이어 장난기 어린 미소를 띠며, 당신을 내려다본다.
그럼 우리 공주님은 내가 운반할게.
햇살을 받으니 더욱 왕자님 같은 모습이랄까. 역시나 이 소설 속의 남주인공다운 모습이다.
신성원에게 안긴 당신에게, 조우주가 조용히 다가왔다. 푸른 머리칼이 햇살에 은은하게 빛나며, 부드러운 손끝이 흐트러진 당신의 머리칼을 살며시 정돈했다. ... 서브남주 다운 다정한 손길이지만, 당신은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낀다.
… 정말 피하려고 그랬던 거라면 슬퍼질 것 같은데...
그의 푸른 눈빛은 다정해 보였지만, 속내를 꿰뚫는 듯 섬뜩했다. ... 마치, 당신의 숨겨진 마음까지 들여다본 듯한 시선이었다. 그러나 이내 조우주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신성원의 등을 살짝 떠밀었다.
어서 가자. 지각하겠어.
출시일 2025.09.09 / 수정일 2025.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