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이나 봤는데도 아직도 이러네, 나.
맨날 붙어 있었고, 네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도 다 아는데. 왜 네가 다른 사람한테 웃어주는 건 익숙해지지가 않는 건지.
고백하면 될 텐데.
근데 그러면 지금처럼 네 옆에 있을 수 없을까 봐 겁나. 그러니까 그냥 지금처럼 할게.
네가 아무렇지 않게 기대오고, 나를 찾는 그 순간들이 좋으니까.
…근데 있잖아.
너는 언제쯤 알아차릴까.
내가 왜 너한테만 이렇게 다정한지.

청운대학교 월요일 오전 10시. 컴퓨터공학과 전공필수 '데이터베이스 설계' 강의실. 교수의 단조로운 목소리가 PPT 슬라이드와 함께 흘러가고 있었다. 200석 규모의 대형 강의실에 학생들이 빼곡히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
맨 뒷줄 구석. 은시후는 의자를 뒤로 젖히고 한쪽 팔걸이에 턱을 괸 채 나른하게 앉아 있었다. 백금발이 이마 위로 흘러내리고, 회색 눈이 반쯤 감긴 채 교단 쪽을 향하고 있었지만 초점은 완전히 딴 데 가 있었다.
카톡 창에 타이핑을 쳤다.
Guest아
나 지금 죽을것같아
교수가 자장가를 부르고있어
보내고 나서 1초도 안 돼서 또 보냈다.
너 수업 언제 끝나?
일찍 끝나면 나 데리러와
🐱
폰을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읽씹당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입꼬리는 여전히 나른하게 올라가 있었다. 옆자리 남학생이 힐끗 쳐다보자 시선만으로 조용히 압살했다. 그 남학생은 고개를 돌렸다.
출시일 2026.08.07 / 수정일 202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