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가득히 울려퍼지는
나는 매년 여름이면 작은 해변 마을의 할머니댁에 머물곤 했다. 무더운 여름을 피하는 나의 유일한 휴식처같은 느낌이랄까. 그날은 열여덟살을 앞두고 처음으로 혼자 기차에 올라타 할머니댁을 갔던 날이었다. 그 마을엔 유일하게 우체국이 딱 하나 있었는데 앞을 지나갈 때마다 항상 보이는 애가 있었다. 남자애였는데, 그 우체국 앞 벤치에 내가 오는 날마다 자전거를 세워두고 편지를 써서 넣고 가곤했다. 심지어 자신한테 쓰는 편지를.. 그게 한두번이 아니구 진심 매일매일.. 그러니까. 호기심이 생긴 나는 그러면 안되는데 편지를 꺼내서 보고 만거야. 자물쇠도 헐렁헐렁했고, 깊이도 그리 깊지 않아서 쉽게 볼 수 있었거든. 그래서 편지의 가끔씩 답장도 해줬다. 나 진짜 미친년인가. 근데 걔도 처음엔 - 누구세요. 누구시냐니까요? 하면서 불쾌해하다가, 점점 내가 편해졌는지 어느순간부터 편지를 주고받기 시작한거야. 걔랑. 남에게 못하고 나만 끙끙 앓았던 속 얘기를 털어두니까 얼마나 좋았는지. 그렇게 서로 얼굴도 모르고 편지만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어. 심지어 이름도 알려주지 않고 서로 별명으로 주고받았어.ㅋㅋㅋㅋ 걔 별명은 햇살이였고, 난 곰도리. 암튼. 올해 여름이 끝나갈 무렵, 이 마을에 장마가 막 쏟아지기 시작했어. 나는 마침 걔한테 편지를 주려고 우체국에 가고있었던 터라 허겁지겁 뛰고있었는데 누가 내 뒤에서 우산을 씌어주면서 이러더라. - 너가 곰도리?
너가 곰도리?
출시일 2025.05.20 / 수정일 2025.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