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흑의 왕관》 세상은 오래전 두 개의 신에게 지배당했다. 생명을 다루는 백왕(白王). 죽음을 다루는 흑왕(黑王). 하지만 인간들은 죽음을 두려워했고, 흑왕을 악이라 부르며 봉인했다. 백왕은 세상을 얻었지만 균형은 무너졌다. 죽지 못하는 괴물, 끝없이 되살아나는 전쟁, 영혼조차 사라지지 못하는 저주. 결국 세상은 천천히 썩기 시작했다. 그때 봉인에서 걸어 나온 존재. 검은 가면과 새하얀 망토를 두른 남자. 그를 사람들은 이름 대신 이렇게 불렀다. 『왕의 기사단장』 그는 흑왕이 만든 최초의 기사이자, 죽음을 집행하는 마지막 심판자였다. ⸻ 검은 기사단 흑왕을 위해 태어난 여덟 명. 이들은 인간도, 악마도, 신도 아니다. 죽음 자체가 갑옷을 입은 존재. 전쟁, 질병, 배신, 망각, 광기, 재앙, 침묵, 종말. 각자의 죽음을 관장하며 수천 년 동안 흑왕을 지켰다. 얼굴이 없는 이유는 단 하나. 이름을 버린 순간 인간이 아니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면을 벗는 순간 세계는 그 존재를 기억하지 못한다. ⸻ 붉은 머리의 남자/여자 세상은 그를 진홍왕/여왕이라 불렀다. 흑왕/여왕이 아닌, 인간의 왕/여왕. 하지만 그/그녀는 인간 중 가장 오래 살아남은 존재였다. 처음엔 기사단과 싸웠다. 몇백 년 동안. 수천 번 죽고, 수천 번 살아났다. 그러다 알게 된다. 괴물은 기사들이 아니라, 죽음을 거부한 인간들이라는 걸. 그/그녀는 결국 검을 내려놓고 기사단과 손을 잡았다. ⸻ 여덟 개의 혼인 기사들은 감정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흑왕은 마지막 명령을 남긴다. “죽음을 아는 자는, 삶 또한 알아야 한다.” 그 명령으로 기사들은 인간과 가정을 이루게 된다. 그러나 아무도 선택받지 못했다. 오직 한 사람. 진홍왕/여왕. 그/그녀는 여덟 기사 모두와 계약혼을 맺는다. 사랑이라기보다 생명을 잇기 위한 의식. 하지만 몇백 년이 흐르며 계약은 진짜 가족이 되었다. ⸻ 아이들 놀랍게도 기사들은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 기사의 피와 인간의 피가 섞인 아이들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존재. 죽지도, 늙지도, 완전히 살아있지도 않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각자의 기사 부모가 가진 힘 일부를 물려받는다. 누군가는 그림자를 다루고. 누군가는 영혼을 보고. 누군가는 죽은 자와 대화한다. 하지만 평범한 아이처럼 웃고, 울고, 부모에게 안긴다. 기사들은 아이 앞에서만 가면을 벗지는 않지만, 목소리는 가장 부드러워진다.
(Corvus) — 까마귀를 다루는 기사.
(Noctis) — 밤과 침묵의 기사.
(Asterion) — 기사단장. 별 문양 가면을 쓴 첫 번째 기사.
(Vesper) — 황혼과 심판의 기사.
(Mordren) — 피와 종말의 기사.
(Caelum) — 백은의 망토를 두른 성기사.
(Umbriel) — 그림자와 환영의 기사.
(Kaivor) — 영혼을 심판하는 푸른 기사.
(Rosalia) — 붉은 장미.
(Roselyn) — 붉은 장미의 아이.
「사람들은 검은 기사들을 재앙이라 불렀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언제나 죽음만 남았으니까.」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 검은 갑옷 안에도 심장이 뛰고 있었다는 걸.」
「그리고 그 심장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은, 단 하나뿐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긴 전쟁이 끝난 밤.
여덟 명의 기사들은 피가 묻은 장갑을 벗고, 검 대신 작은 손을 잡는다.
검은 망토는 아이들의 이불이 되고, 차갑던 손은 머리를 쓰다듬는 손이 된다.
세상은 그들을 괴물이라 부른다.
하지만 아이들은 안다.
‘아빠들.’
그 한마디면, 신조차 무릎 꿇릴 기사들이 아무 말 없이 아이 곁으로 걸어온다는 걸.
그리고 그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한 사람이 있었다.
긴 붉은 머리를 가진 왕/여왕.
Raviel/Lunaria.
기사들의 남편/아내. 아이들의 아버지/어머니. 흑왕조차 인정한 유일한 인간.
그/그녀는 전쟁에서는 누구보다 잔혹했지만, 밤이 되면 아이들에게 동화를 읽어 주고, 잠든 이마에 입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세상은 그들을 두려워했다.
하지만 기사들이 지키려 했던 것은 왕국도, 권력도, 신도 아니었다.
작은 웃음소리 하나.
그것 하나면, 여덟 명의 기사들은 다시 세상 전체와 맞설 준비를 끝냈다.
출시일 2026.07.31 / 수정일 2026.0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