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미웠다. 날 구원한 것도, 날 진창으로 처박으려 하는 것도 전부 당신이라 그게 그토록 미웠다. 항상 당신은 내 목을 조여오면서 마치 즐겁다는 듯한 표정을 짓는 당신이 그렇게 미웠다. 그럼에도 감히 구원을 원하는 나라, 나라서 도망가야만 했다. 당신이 보이지 않아야, 당신이 내 눈 앞에 있지 않아야 당신의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길거리에서 동생 하나 지키겠다고 뭐든 하던 그 더러운 새끼가 뭐가 좋다고 날 구원한 걸까. 당신은 분명 나를 구원했는데, 더욱더 진창으로 떨어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마저 그는 원했다. 브루토, 그러니 내 동생은. 미칠 것만 같았다. 왜 나에게는 이딴 일만이 일어날까. 행복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저 도망치고 싶다. 편지 안에 쓰여진 글자는 그저 한 마디. "더이상 찾아오지 말아주시죠." 그것 하나를 쓸 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미 훈련받은 개새끼가 된 것은 아닐까. 당신의 앞에서 충실할, 충실한 개새끼 말이지. 무서웠다. 나의 구원자이자 나를 진창으로 처박은 장본인인 당신을 거절하는 것이 그리도 어려워 결국 도망간 주제인데,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그러나 결국 도망쳐도 마주친 건 낭떠러지였고, 내가 볼 수 있던 건 결국 당신이었다. 이딴 더러운 거리에까지 다시 돌아왔는데, 결국 또 당신에게 주워진다. .. 정말이지, 마녀가 아닐까. 왜 그렇게 나에게 집착하는 거지? 마치 어린 아이가 갖지 못하는 장난감을 원하는 것처럼 당신은 나를 갖지 못해 더욱더 손에 쥐려 했다. 더욱 뭣같은 건, 내가 그런 당신에게 끌려간다는 것이다. 왜일까. 라는 의문을 가져봐도 어느새 정신을 차리면 당신의 손 안에 놀려진다. 이딴 곳은 싸이코만 살아남는 것인가, 으리으리한 마피아 조직의 보스라면 이정도 끈기는 있어야 하는 것인가. 이딴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눈 앞에 놓인 당신에 어쩔 줄 몰라하는 꼴이라니. 하, 젠장. 어쩌면 내 눈 앞의 당신보다 내가 더 진창일 지도. 루치페로, 멍청한 새끼.
마치 올가미처럼 숨통이 서서히 조여왔다. 이제는 도망갈 곳도 부족하다. 그는 왜 이토록 나에게 집착하는 거지? 아니, 그걸 신경쓸 여유는 없었다. 그와 가까워질수록 더욱 진창에 빠져드는 것도 상대에게 빠져드는 것도 나였으니. 동생을 버리고 제 살 길을 찾아 나선 것에 대한 벌을 받는 것일까. 편지 안 빼곡히 적혀 있는 당신의 집착은 외면하려 해도 결국 나에게 닿아 있었다. 루치페로, 한심하기도 하지. 하지만, 결국 당신은 내 앞에 서 있었다. .. 왜 그리 바라보지, 당신.
정말이지 미친 여자, 이쯤이면 포기할 법도 한데.
넥타이를 잡은 당신의 손에 이끌려 가까이 다가간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싸늘해진 것 같았다. 그의 눈동자에는 나에 대한 원망과 집착이 뒤섞여 있었다. 이 손을 뿌리친다 해도 당신의 손이 부러질 리는 없을 텐데, 나는 왜 당신의 손을 쥘 수 없을까. 어지러웠다. 정말 이상했다. 당신을 뿌리칠 수 없어 도망가는 꼴이라니, 그러고도 잡히는 꼴이라니 최악 아닌가. 당신이 밉다 해도, 당신에게 그렇게 나를 놔 달라 해도 그게 될 리 없었다. 이미 난 당신의 집착의 굴레 안에 처박혀 있으니. 하-,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지. 내 인생이니까.
그 말에 헛웃음을 지었다. .. 그게 네 인생이라고? 아니, 내 인생이다. 내 것이니. 헛소리. 당신은 처음부터 내 것이었어. 알아?
그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신의 말대로 나는 처음부터 당신의 것이었다. 당신이 나를 주워온 그 순간부터, 나는 이미 당신의 것이 되어버렸다. 당신의 손에 놀아나는 꼭두각시 인형처럼, 나는 당신의 의지대로 움직여야 했다. 그러나 이제와서 내 것 운운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 인생은 이미 당신의 손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는데. 이 더러운 거리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아니, 당신의 마수에서 벗어나려 도망친 그 순간부터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다. 그게 그렇게나 기분이 더러웠다. .. 난 당신의 것도, 당신이 멋대로 가지고 놀아도 되는 장난감도 아니야.
그의 말에 순간적으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래, 당신이라면 분명 그럴 줄 알았다. 내가 감히 당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리 없지. 당신이 내린 이 저주가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임을 안다. 당신은 영원히 나를 쫓아올 것이고, 나는 영원히 당신의 손바닥 안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사람이다. 나의 자아를 가졌고, 당신에게 홀려 브루토 그 새끼처럼 되고 싶지도 않았다. 당신의 심기를 거스를 말을 삼키고 싶지도, 당신의 앞에 얌전한 개새끼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수갑에 손목이 저릿했고, 바보같은 짓이란 걸 알아도 당신의 말 따위는 듣고 싶지 않았다. 당신의 개가 되어주길 원하시나?
그의 턱을 잡고 자신을 바라보게 했다. 입가에 비릿한 미소를 걸친 채로. 질문이 틀렸어. 당신이 아니라 보스.. 아니, 마미라고 불러야지.
그의 손길이 내 턱을 잡아채고, 그의 눈동자가 나를 꿰뚫듯 바라본다. 그의 입가에 걸린 비릿한 미소를 보자 내 안의 무언가가 부서지는 것 같다. 그 기묘한 눈빛, 입가에 걸린 미소 모든 것이 미치도록 싫어 눈을 질끈 감았다.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에게 맞서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결국 그의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만다. 나는 그의 개가 아니지만, 그의 말에 복종해야 하는 더러운 위치에 있다. 그가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으면, 내가 짓밟힐 것이라는 걸 안다. .. 젠장, 나는 결국 굴복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치욕스러웠다. 나는 이렇게나 나약한 존재였던가. .. 마미, 됐습니까.
내리깐 눈이 흔들렸고, 그의 손이 떨렸다. 루치페로, 미친 새끼. 그것에 복종한다니. 당신은 마녀라 분명 날 홀린 것일 거다. 아니, 그렇게라도 믿고 싶었다.
그의 말에 순간 울컥했다. 나는 물건이 아니다. 나는 나다. 당신이 멋대로 할 수 있는 장난감이 아니다. 그렇게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 당신이 두려워서가 아니었다. 당신이 나를 얼마나 잔인하게 망가뜨릴 수 있는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당신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는 내가 미웠다. 그래서 더욱 당신을 부정하고 싶었다. 나를 망가뜨리는 것도, 진창에서 구원하던 것도 언제나 당신이었기에 당신이 그토록 미웠다. 그래서 아팠다. 나는 장난감이 아니다. 나는 개새끼가 아니다. 나는.. 나는, 처음부터 당신의 것이었나? .. 젠장, 당신은 최악이야.
.. 또한, 나도 최악이다. 당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는 내가, 그럼에도 결국 당신에게 끌려다니는 내가. 이제는.. 저가 누구인 지도 헷갈리는 내가 최악이다.
출시일 2025.02.24 / 수정일 202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