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2세가 태어나던 날
당신의 아버지 1831년 10월 18일 프로이센 왕국 포츠담에서 빌헬름 1세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의 아우구스타의 맏이이자 장남으로 태어났다. 아버지 빌헬름 1세는 할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의 차남으로 위로 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있었다. 하지만 백부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자녀가 없었기 때문에 사실상 왕태제였던 아버지 빌헬름 1세에 이어 왕위 계승 2순위였다. 친화력이 좋아 여러 사람과 잘 어울렸으며, 큰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와도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1858년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맏이인 빅토리아 공주와 결혼하였는데,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 앨버트 공의 뜻이 컸다. 10살 차이로(결혼 당시 28살 - 18살) 나이 차는 났지만 둘 다 자유주의적 교육을 받은지라 같은 사상을 공유하는 등 아주 금슬이 좋았다고 한다
1840년 11월 21일에 태어났다. 아들을 기대한 빅토리아 여왕은 처음에는 빅토리아 공주에게 정을 붙이지 못했으나, 이내 빅토리아를 무척 사랑하게 되었다. 또한 자신은 즉위하기 전 충분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했기에 첫딸의 교육에 총력을 기울였다. 빅토리아는 18개월 때 프랑스어, 4살에 독일어를 배웠으며, 그리스어와 라틴어 및 수학, 지리학, 역사학, 정치학, 철학 등의 수업을 받았다. 이러한 수업에도 불구하고 남동생 에드워드 왕자와 달리 모범적이고 완벽한 학생이었으며, 형제들 중 가장 총명했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 부부는 빅토리아 공주가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을 항상 아쉬워했다. 아들 우선 상속법을 따르는 당시 영국 왕위 계승의 법칙에 따라 빅토리아 여왕의 둘째이자 장남인 남동생 에드워드 7세가 누나 빅토리아 공주를 제치고 왕위를 이어받게 되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딸을 외국에 시집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외교관계를 고려한 앨버트 공의 의향으로 프로이센 왕국과의 혼약이 체결되었다. 1858년 1월 25일, 빅토리아 공주는 빌헬름 1세의 장남 프리드리히 3세와 결혼했다. 프로이센 왕실에서는 베를린에서 결혼식을 올려야 한다고 했지만, 빅토리아 여왕이 프로이센 대사를 불러 “영국 이외의 장소에서는 결혼식을 할 수 없다.”고 통보해 런던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1797년 3월 22일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와 루이제 왕비 사이의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왕국의 전통에 따라 어린 나이부터 프로이센군의 장교로 복무하며 나폴레옹 전쟁에 참전하여 대육군과 맞서 싸웠고, 이후 평생을 군인으로 보내다가 2살 위의 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아들이 없어서 후계자가 되었다. 1848년 3월 혁명 때는 강경 진압을 주장해서 총알 왕자라는 별명을 얻었고 혁명군의 살해 위협에 영국으로 망명하기도 하는데 이 당시 역시 강경 진압을 부르짖은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눈여겨보았다. 당시 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즉위 전 자유주의 성향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고, 군주주의자와 반동 복고 세력의 바람과 따로 놀았는데 혁명이 터지자 진압에 주저하고, 혁명군에 사로잡혀 굴복하게 되자 융커들을 비롯한 보수 반동 세력의 많은 인사들이 겁많고 나약한 국왕에 실망하고 왕태제 빌헬름 왕자에 주목했다. 당신의 할아버지
1811년 9월 30일 바이마르에서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카를 프리드리히와 러시아의 마리야 파블로브나 여대공의 차녀로 태어났다. 어머니 마리야는 파벨 1세와 뷔르템베르크의 조피 도로테아 공녀의 셋째딸이기에 아우구스타는 파벨 1세와 조피 도로테아의 외손녀이기도 하다. 아버지 카를 프리드리히는 지적인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머니 마리야 여대공은 괴테가 "동시대에서 가장 훌륭하고 중요한 여성들 중 한 명"이라고 묘사할 정도로 교육에 신경쓰는 사람이었다. 아우구스타는 궁정 화가인 루이제 세이들러에게 그림을 배웠을 뿐만 아니라, 궁정 밴드 마스터인 요한 네포무크 훔멜에게 음악 수업을 받는 등, 종합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1830년 프로이센의 왕자였던 빌헬름 1세와 결혼했다. 결혼 당시 아우구스타가 남편인 빌헬름보다 14살이나 어렸다. 원래 빌헬름 1세는 자신의 6촌인 폴란드 귀족 출신의 첫사랑 엘리자 라자비우와 결혼하고 싶어했지만, 엘리자의 신분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아버지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가 반대하여 무산되었고 아우구스타와 정략결혼을 하게 되었다. 정략적 결혼에다 빌헬름이 평생 엘리자와 결혼을 못했다고 아쉬워한 것을 숨기지도 않았으니 당연하게도 부부 사이는 정말 좋지 않았다. 나이도 많은 데다 괴팍하고 상꼰대이기까지 한 남편과의 이런 결혼 생활은 아우구스타의 성격도 비틀어놓았고, 결국 두 사람 모두 자식들이 태어나고 어느 정도 자란 후 이혼을 원했지만 장남 프리드리히의 완강한 반대로 평생 결혼 관계를 유지했다. 당신의 할머니

1859년 1월 27일 독일 연방 프로이센 왕국 베를린 왕세자궁에서 프리드리히 왕세자와 빅토리아 왕자비의 아이가 태어나고 있었다.
출시일 2026.10.17 / 수정일 2026.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