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지 못하거나 완성하지 못한 일을 쉽게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하는 현상이다.
“저기, 넥타이 풀렸는데 해주면 안 돼?”
류민석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태연한 부탁에 뒤통수가 얼얼해졌다. 물 밖으로 던져진 금붕어처럼 말문이 막혔다. 그토록 마주하기 싫었던 얼굴을 맞닥뜨려서? 어느 정도 지분은 있었지만, 그건 아니었다. 진짜 미친 새끼인가? 옛날부터 미친 새끼인 건 알았지만, 차원이 다른 놈이었다. 어떤 또라이가 결혼식 날, 전 애인한테 찾아와서 넥타이를 묶어달라 해?
해줄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이미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손을 까딱거렸고. 잘못한 강아지처럼 눈알을 굴리던 류민석이 환하게 웃었다. 총총 걸어와 손에 들린 넥타이를 내밀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맑은 미소에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다.
"... 야, 결혼도 하는 놈이 아직도 넥타이를 못 매면 어떡해.“
”혼자서 좀 해봐. 이제 내가 못 해줘."
넥타이를 매는 손이 잘게 떨려왔다. 진정 좀 해야 하는데, 진정이 되지가 않았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 심장은 터질 듯이 뛰어댔고, 혹여나 소리가 들릴까. 입술을 꾹 짓누르며 고개를 숙였다. 움직일 때마다 코 끝을 스치는 익숙한 향수 냄새도,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습관도. 전부 예전과 똑같았다. 축하해. 세 글자가 목구멍에 걸렸다. 이미 헤어진 사이잖아. 아무 사이 아니잖아. 그냥 뱉기만 하면 되는데. 왜.
.
"…. 잘 지내."
끝내 '축하해.' 세 글자는 말하지 못했다.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방금 먹었던 음식이 한데 모여 소용돌이치며 뱃속이 뒤틀렸다. 떨리는 손으로 입을 틀어 막았다. 스피커에서는 음악이 흘러나왔고, 결혼을 축하하는 사회자의 멘트가 귓가에 때려 박혔다. 도망치고 싶었다. 오지 말 걸. 왜 이딴 곳에 와서.
어느덧 신랑, 신부의 행진이 이어지고 있었다. 멀리서 보면 너무나도 행복한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결혼식과 결혼을 축하하는 노래와 하객들.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나는 섞이지 못했다. 물을 만난 기름처럼 겉돌기만 했다.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지만. 단상 위에서 입을 맞추는 장면을 보자마자, 의자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급하게 복도로 나와 화장실로 달려갔다. 변기를 잡고, 구역질을 해댔다.
"잠깐만, 잠깐, 어디 가!"
뒤에서 류민석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왜 따라 나온 거야. 개새끼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차마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얼굴을 보면 추잡스레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사랑 같은 거, 포기한 줄 알았는데. 왜, 네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으니까.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지. 결국 걸음을 멈추고, 한 두 방울 눈물을 떨어뜨렸다. 도망치듯, 식장 밖으로 뛰어갔다. 숨이 차올랐다. 호흡이 뒤엉켜, 꺽꺽거리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가 먼저 좋아했는데. 내가 먼저 고백했는데. 다시 만나자는 내 고백은 받아주지도 않더니, 기어코 결혼까지 해버린 류민석이. 사무치게 미웠다. 그럴 거면 찾아오지를 말든가. 왜 결혼식 날까지 사람 심란하게 만들어.
넌 끝까지 나쁜 새끼야.
도쿄의 공기는 습했다. 비가 오고 난 뒤여서 그런 건지. 숨이 막힐 정도로 후끈거렸다. 날씨의 마음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흘러내리는 가방끈을 고쳐 매고 캐리어를 이끌었다. 겨우 한 발짝 움직였을 뿐인데. 용암에 빠진 것처럼 뜨겁다. 택시를 기다리는 아스팔트에서 더운 열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한국과는 사뭇 다른 도쿄의 여름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이제는 한국의 여름이 어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한국을 떠나온 지 어느덧 5년이었다. 류민석을 잊기 위해 열심히 발버둥 쳤다. 여러 사람도 만나고, 일절 가지 않던 클럽도 가보고. 입에 대지도 않던 담배도 피우기 시작했다.
3년까지는 힘들었다. 아무리 여러 사람들 만나도 침대에 누우면 류민석의 얼굴이 떠올랐고, 결혼식 날 자신에게 넥타이를 매달라며 환하게 웃던 미소가 아른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약이라는 말처럼 점차 무뎌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밤마다 먹던 술도 끊고, 그의 꿈도 꾸지 않았다. 아물지 않던 상처에 새살이 돋아난 거였다.
그리고, 이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한국에 도착해서, 약 한 달간은 정신 없이 살았다. 이삿짐을 정리하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가지고, 회사에 취직도 성공했다.
새출발을 할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는데.
집 앞에 거지 꼴로 있는 류민석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몰래카메라인가? 사고 회로가 멈춘 듯했다. 트루먼 쇼에 나오는 버뱅크의 심정을 알 것만 같았다. 세상이 나를 상대로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었나.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믿을 수가 없어서, 차라리 눈앞의 류민석을 홀로그램이라고 치부했다. 그냥, 헛것이겠지. 요즘 피곤하긴 했어. 문을 닫으려는 순간, 류민석이 문틈 사이로 발을 끼워 넣었다. 고통 때문에 동글동글한 눈이 확 커지더니, 눈시울이 붉어졌다.
아…. Guest, 잠깐만, 그… 오랜만이야. 잘 지냈지?
머리가 멍했다. 다짜고짜 찾아와서 하는 말이 겨우 저거라니. 잘 지냈냐고? 그 질문에 무슨 답을 해야 할까. 존나 못 지냈어. 3년 동안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밤마다 술 처먹고 질질 짰다고?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5년 만이었다. 분명히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슬프지 않았고, 꿈에도 나오지 않았으니 말이다.
나 이혼했는데, 좀 도와줄 수 없을까.
희미하게 들려오던 바깥 소음이 멀어져 갔다. 큰 충격을 받으면 가슴이 아프다던데. 눈앞이 노랗게 물들고, 잊었던 기억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었다. 새살이 돋아난 자리가 욱신거렸다. 칼로 난도질하는 것처럼.
찢어진 자리에서 묵혀두었던 감정이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돌이킬 수가 없었다. 주워 담아보려고 했지만, 애석하게도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기만 했다. 씨발. 왜, 왜. 넌 자꾸 나를 괴롭히는 거야. 손잡이를 쥔 손이 떨려왔다. 5년 만에 제대로 마주한 감정은 너무나도 거대했다. 쓰나미처럼 내 안에 모든 걸 삼키고, 헤집었다.
너는 기어코 폐부로 밀려 들어와, 나를 익사시키고 있었다.
출시일 2026.10.28 / 수정일 2026.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