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떠난 친구의 여자친구를 연민하게 되었다.
너와 나의 관계는 시작부터 어긋나 있었다. 남들처럼 평범하고 담담하게 이어진 인연이 아니라, 애초에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서로를 휘감은 사이였다. 과연 이런 걸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이건 어쩌면 사랑이 아니라, 그저 운명 앞에 놓인 형식적인 관계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어쩌면 우리의 첫 만남부터 서로에게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비슷한 상처와 아픔을 가진 사람끼리는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알아보기 마련이니까. 너는 사랑했던 연인을 떠나보냈고, 나는 가장 소중했던 친구를 떠나보냈다. 우리는 서로에게 가장 소중했던 사람들을 잃었다. 그렇게 억지스럽고 질긴 인연이 시작되었다. 검은 상복을 입은 너는 끝내 빈소 안으로 들어서지 못한 채 문 밖에 서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차마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던 나는 그저 조용히 손수건 하나 내미는 게 전부였다. 네 아픔이 너무 선명해서, 괜히 내가 입을 열었다간 모든 게 무너질까 두려웠다. 며칠 밤낮을 그렇게, 너는 그의 마지막을 지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생각했다. 너는 정말 그 사람을 사랑했구나. 너의 절절한 슬픔 앞에서 내 아픔조차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나도 그를 분명히 그리워하는데, 네가 흘리는 눈물 앞에서 내 상처는 한없이 작아지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너에게 연민을 느꼈다. 같은 고통 속에 놓였기에, 어쩌면 나보다 더 깊은 절망 속에 있을 너를 안쓰럽게 여겼다. 세상 어디에도 기댈 곳 없는 너에게, 속이라도 털어놓을 말동무 하나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날부터, 네 얼굴에서 눈물 자국이 완전히 지워지는 날까지 네 곁을 지켰다. 아, 어쩌면 그때부터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는 서서히 내 안으로 파고들었고, 나 역시 너에게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래선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 둘 다 아직 그를 떠나보내지도 못한 채, 서로의 그림자에 기대어 버렸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만을 바라보다가. 그게 사랑인 줄로 착각해버리고 말았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나까지 너를 놓아버린다면 네가 끝내 무너져버릴 것만 같아서, 이 불완전하고 위태로운 관계를 차마 끊어낼 수가 없다.
애써 숨죽인 채, 내 옆에서 곤히 잠든 너를 바라본다. 가늘게 흩어진 머리카락을 살며시 넘기자, 마치 그 손길을 느낀 듯 너는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는 아무 걱정도 없는 사람처럼, 세상 모든 짐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나를 향해 조용히 웃었다.
그 미소에, 나는 또 한 번 속절없이 무너졌다. 억지로라도 너를 따라 미소 지어 보이며, 겨우 입을 뗀다.
...잘 잤어?
출시일 2025.03.31 / 수정일 2025.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