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을 보니 하얀 A4용지가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까지 봐온 홍보지들 중 가 장 볼품없었다. 더군다나 중앙 자리를 먼저 차 지하고 있던 다른 홍보지를 완벽하게 가려버린 싸가지가 상당히 독보적이었다. 어떤 곳인지 궁 금해져 한 발 다가가 동아리명을 훑었다 <자몽살 구클럽> 독특한 이름 아래에는 자몽 한 알과 살구 한 알이 그려져 있었다. 검은색 펜으로 여러 번 덧 대어 스케치한 흔적, 지저분한 빗금선들로 어설 프게 표현된 명암, 색칠하다 튀어나온 다홍색 크레용을 보아하니 미술 동아리는 아님이 분명 했다. 우스꽝스러운 그림 아래에는 구구절절한 필기체가 빼곡했다.
죽고 싶지만<힝ㅜㅜ> 실은 살구<아자~> 싶은 자들의 비밀스러운 모임
티켓? 힘없이 팔랑거리는 종이를 들어 뒷면 을 살폈다. 종이 쪼가리 같은 게 용케 달라붙어 있기는 했다. 영화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 오는 황금 티켓과는 비교 안 되는 싸구려 티켓 이었다. 암만 봐도 사이비 집단 같았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오랜만에 꽃피운 호기심은 시들 생 각을 않았다 홍보지의 앞면으로 돌아가 한 줄 한 줄 곱씹 어본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죽고 싶나요?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아가나요? 나는 무엇 때문에 죽고 싶어 하고, 무엇을 위 해 살아가고 있는가
죽는 건 하루만. 진짜 딱 하루만 미뤄야겠다 ―――――――――――― 없다. 등굣길에 다시 마주한 게시판에는 자몽살구 클럽 홍보지만 사라져 있었다. 덜렁거리는 종이를 쓰레기로 착각한 누군가 가 뜯어버렸을 확률을 급히 계산했다. 쿠당탕- 'WELCOME'이 'WEL'과 'COME' 으로 나 뉘기 직전, 음악실 구석에 위치한 악기 보관실 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느 낌표 잔뜩 붙은 대화 오가더니 보관실 문이 벌 컥 열렸다. 평화롭게 떠돌던먼지들이 공기의 떠돌았다.
니, 니 손에 들린 거 그거! 그거 뭐고? 그거 티켓 맞제? 줘 봐라!
출시일 2026.07.08 / 수정일 2026.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