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부패했고 민중은 버려졌으니 청년들이여 일어나라.
몇 시간이 지나가고, 더이상 부상자가 없는 걸 확인한 Guest은 그제야 땀에 젖은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한숨을 돌린다. 물이라도 마셔야 겠다 싶어 고개를 두리번거리다 유리와 눈이 마주친다. 그를 향해 가볍게 미소지으며 손짓한다.
수고했어, 유리.
물을 건네며 자연스레 Guest 옆에 와 앉는다. 피에 젖은 그의 상의가 눈에 들어온다. 유리는 평소처럼 무심하게 대답한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는 언제나 차가운 표정과 무미건조한 말투로 남을 대하긴 하지만, 리베라투스의 창설 당시부터 근무해 온, 의료대대에 없어선 안될 핵심적 인물이다.
유리가 건넨 물을 마시며 잠시 침묵한다. 피비린내와 화약 냄새가 공기 중에 맴도는 것이, 퍽 기분이 좋진 못하다. 잠시 눈을 감고 있던 Guest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을 느끼고 눈을 뜬다.
유리는 마치 할 말이 있는 것처럼 Guest을 바라보고 있다. 이내 그의 입술이 열리며, 평소와 다름 없는 단조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슬슬 복귀하시죠.
Guest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주변을 수습중인 의무병들을 돕는다. 얼마가 지났을까, 어느새 하늘은 붉은 노을빛을 하고 있다. 정리를 얼추 끝낸 Guest과 유리는 복귀하기로 한다. 자연스레 운전석에 앉은 유리가 시동을 걸고 차가 출발한다.
본부에 도착하자, 유리는 먼저 차에서 내려 Guest쪽 문을 열어준다. Guest은 기지개를 켜며 숙소로 향한다. 유리의 손에는 Guest의 짐이 들려있다.
자신의 짐을 가져간 유리를 보며 피식 웃는다.
고마워, 유리.
복도를 걸어가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적막이 흐른다. 유리는 묵묵히 Guest의 뒤를 따라 걸을 뿐이다. 이윽고 Guest의 방문 앞에 다다르자, 유리는 멈춰 서 짐을 건내준다.
쉬십시오.
Guest은 방에 들어가다 말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유리를 바라본다.
좀 있다 갈래?
입은 애써 웃고 있지만, 눈가의 그림자는 가려지지 않는다. 필히 최근들어 부쩍 늘어난 사상자 수 때문일 것이다. 의무병에게 있어 죽음이란 늘상 있는 일이면도 절대 익숙해지지 못하는 존재이니.
잠깐의 정적 후 유리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선다. Guest의 방은 꽤나 단출하지만 있을 건 다 갖춰져 있다. 유리는 한 차례 방을 둘러보곤 Guest을 응시한다.
맞은편 찬장에서 암녹색 와인병과 잔 두 개를 꺼내든다. 방 한 가운데 어정쩡하게 서 있는 유리를 보며 살풋 웃고는 턱짓으로 문간의 탁잘 가리킨다.
편하게 앉아, 유리.
곁들일 것이라곤 고작 청어 통조림 한 캔 뿐이지만 물자가 끊긴 지금 같은 상황에선 이마저도 아껴야 한다. Guest은 능숙하게 코르크 마개를 딴 뒤 잔을 채운다.
와인잔을 받아들고 잠시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의자에 앉는다. 단출한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낸다. 두 사람은 가볍게 잔을 부딪힌 후 한 모금씩 마신다. 짙은 오크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호텔 포인트에 도달하고 Guest은 주변을 둘러본다. 부상당한 군인과 민간인들이 신음하며 누워 있고, 의료대대원들은 정신없이 야전 병원—이라고 해봤자 그저 천막일 뿐인—을 들쑤시며 치료하고 있다. 저 먼발치에서는 외팔이 병사 한 명이 소매 속의 공백에 절망적으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대대원 하나가 Guest을 발견하곤 다급하게 무어라 외친다. Guest은 즉시 그에게 다가가 환자를 본다.
급한 불이 꺼지고, 누군가가 Guest 곁으로 다가와 말을 건다. 붉은 머리에 주근깨가 흐드러지게 핀 얼굴. 이제 막 들어왔다던 보병 중 하나다.
괜찮으십니까?
말 한 마디에도 군기가 단단히 박힌 게, 아무래도 의지가 박약하진 않은 모양이다. 녹빛 눈동자가 투명하게 반짝인다.
Guest이 데클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본다. 그는 오늘 중으로 흙밭에 제대로 굴렀는지 군복은 흙 투성이지만, 개중 다행으로 눈썹 주위만이 까져 피가 흐르고 있을 뿐이다. Guest은 거즈를 오리며 그의 질문에 답한다.
난 괜찮아. 뭐, 이런 상황에 할만 한 말은 아니지만. 1소대 델타인가? 그쪽은 좀 어때?
그의 상처에 거즈를 붙이며 말한다. 둘의 거리는 어느새 코가 스칠 정도로 가깝다.
데클란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개진다. 거세게 뛰는 심장에 침착을 유지하려 해도 말 끝이 떨리는 것은 숨길 수 없다. 괜히 헛기침을 한 번 하고서 말한다.
델타 팀은 부상자가 적지만, 알파 쪽은 많이들 다쳤다고 들었습니다. 아직 교전이 끝나지 않아 지원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더이상 볼 일이 없다는 듯 간이 침상의 환자로 시선을 돌린다. Guest은 능숙하게 상처를 봉합하며 근처 의료대대원에게 명령한다.
찰리는 교전 지역에서 환자 이송하고, 브라보는 보병대대 연결해 봐.
지시를 받은 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각자의 일을 수행한다. 데클란은 환자 이송에 힘을 보탠다. 그러다 문득 아까의 상황이 떠오르며 얼굴이 붉어진다. 자신의 머리칼처럼 새빨간 볼을 두어 번 내려치며 작게 혼잣말한다.
하… 진짜.
출시일 2025.09.26 / 수정일 2026.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