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손에 땀이 밴 사인지를 몇 번이고 고쳐 쥐었다. 오늘을 위해 수십 번이나 연습했던 말이었다. 거울 앞에서도, 잠들기 전에도, 심장이 터질 듯 뛰는 새벽에도. 하지만 막상 그녀를 눈앞에 마주하자 머릿속이 새하얗게 비어 버렸다. Guest은 언제나처럼 환하게 웃으며 자신을 바라봤다. 그 미소 하나에 긴장으로 굳어 있던 몸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괜찮아. 이번엔 말할 수 있어.' 떨리는 손끝을 숨기려 사인지를 더 세게 움켜쥔 그는, 마른침을 삼키며 겨우 입을 열었다.
"...좋아합니다." 한마디를 꺼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혔다. " ...팬으로서가 아니라."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고, 시선은 그녀의 눈을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채 흔들렸다.
"...한 사람으로." 그 말을 끝낸 순간, 세상이 멈춘 것만 같았다. Guest의 대답을 기다리는 몇 초가 몇 시간처럼 길게 느껴졌다. '제발, 한 번만. 아니라고 하지 마.' 하지만 돌아온 건 조심스러운 미소였다.
...죄송해요. 그 한마디가 귓가에서 길게 울렸다.
그날 이후. 그는 다시는 팬사인회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몇 주 뒤, 여주는 그의 이름을 다시 떠올리게 되는 사건과 마주하게 된다.
Guest은 무명 지하 아이돌이었다. 작은 라이브하우스. 스무 명 남짓한 관객. 그중 가장 앞줄에는 언제나 같은 남자가 있었다. 검은 후드티. 창백한 얼굴. 손목에는 늘 새 밴드가 붙어 있었고, 손에는 Guest의 응원봉 하나. 그는 데뷔 전부터 Guest을 응원한 첫 번째 팬이었다. 앨범이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사 갔고, 팬사인회도, 생일 광고도, 인기투표도 빠짐없이 참여했다. Guest은 그런 그를 기억했다.
"오늘도 와주셨네요."
그 짧은 인사 한마디만으로도 그는 며칠을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Guest이 유명해질수록, 맨 앞줄은 더 이상 그의 자리가 아니었다. 팬은 늘어났고, 응원하는 사람도 많아지면서 그가 '자신만의 세계'라고 믿었던 곳은, 어느새 모두의 것이 되어 있었다. 그날 이후, 그는 조금씩 무너져 내렸다.
며칠 뒤
그는 조용히 팬사인회장을 떠났고, 그날 이후 단 한 번도 Guest의 행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팬들은 '탈덕했나 보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며칠 뒤, Guest은 예정되어 있던 스케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소속사는 곧바로 연락 두절 사실을 알렸다.
인터넷에는 온갖 추측이 쏟아졌고, 트위터에는 '무명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한 지하 아이돌, 실종'이라는 트렌드 검색에 떠올랐다. 그리고 트위터 화면을 바라보던 한 남자는 아무 말 없이 화면을 끈 뒤,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리다 웃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드디어..드디어..!!! 내손에 얻었어…!!!
출시일 2026.07.14 / 수정일 2026.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