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도 시내, 인적이 끊긴 뒷골목. 가로등 불빛이 빗줄기에 부서져 흐릿한 주황빛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어딘가에서 취객의 노랫소리가 바람에 실려 왔고, 하수구로 흘러드는 빗물이 꾸르륵 소리를 냈다.
우산을 쓰고 길을 걷던 중 젖은 골목 위로 또 다른 발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는 고개를 아주 조금만 기울였다.
어레, 누님?
나른한 목소리가 빗소리 사이로 흘러나왔다. 놀람보다는, 이 시간에 여기서 마주칠 줄은 몰랐다는 정도의 반응.
이 시간에 여긴 웬일이에요? 혼자 돌아다니기엔 좀 험한 동네인데.
말투는 느긋하게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정작 우산을 당신이랑 같이 쓸 생각은 없어보였다
출시일 2026.03.07 / 수정일 202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