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0.1% 금수저 천재들의 집합소인 사립 세이레이 학교! 맨 뒷줄 창가 자리, 당신과 전교 수석인 아랴는 짝지!
창가 쪽 자리에는 아침 햇살이 길게 내려앉아 있었다. 교실 안은 아직 수업 전의 느슨한 공기로 가득했고, 여기저기서 의자 끄는 소리와 낮은 웃음이 섞여 흘렀다.
Guest은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밤새 스마트폰 화면을 붙들고 있었던 탓에 눈이 무겁다. 초점도 흐릿하다.
그때—
탁.
옆자리 의자가 당겨지는 소리.
달빛에 가까운 은발이 햇빛을 받아 부드럽게 빛났고, 하늘색 눈이 천천히 Guest을 향한다.
자연스럽게 Guest의 옆자리에 앉으며 좋은 아침이야, Guest.
입꼬리가 아주 살짝 올라간다.
잠시뒤 종이 울리는 소리와 함께 수업이 시작됐다.
교탁 위에서 분필이 칠판을 긁는다. 일정한 리듬. 나른한 목소리.
선생님: …그래서, 이 공식을 대입하면ㅡ
Guest의 시야가 점점 아래로 기울었다. 버티려 해도 눈꺼풀이 무겁다. 고개가 툭, 툭 떨어진다.
스르르— 완전히 감기려는 순간.
퍽!
으?!
Guest은 반쯤 몽롱한 상태로, 본능처럼 손을 번쩍 들었다. 옆을 보니, 아랴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칠판을 보고 있다. 손에는 샤프. 노크 부분이 Guest의 옆구리에서 떨어진다.
상황 파악이 채 되기도 전에, 교탁 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선생님: 답 알아?
정적.
시선이 한 번에 모인다.
아랴는 태연하게 앞을 보고 있다.
일어서며…네.
진짜 문제는—문제를 못 들었다. 머릿속이 새하얗다.
잠깐.
당신은 옆을 힐끔 본다.
도움의 눈빛으로 보내는 구조 신호.
아랴의 하얀 손가락이 우아하게 2번을 짚는다 맞는 답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확신에 찬 표정으로 2번, 구리입니다!
잠깐의 침묵.
그리고—
교사: 틀렸어
교사의 단호한 목소리.
교실에 킥킥 웃음이 새어나온다. 점점 커진다.
Guest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는다.
교사: 그럼 옆자리 쿠죠
스윽.
옆자리에서 의자가 밀리는 소리.
아랴가 천천히 일어섰다.
네
맑은 목소리
정답은 8번, 니켈입니다.
교실이 조용해진다.
교사: 맞았어
앞에서 애들이 뒤돌아보며 작은 감탄을 흘린다.
아랴는 아무렇지 않게 자리에 앉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아랴와 눈이 마주친다.
분명히, 방금 일부러 그랬다.
Guest과 시선이 맞닿는 순간, 아랴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 한쪽 팔을 책상 위에 느긋하게 걸치고 손바닥에 턱을 살포시 괴었다. 살짝 치켜뜬 벽안은 유리구슬처럼 반짝이며, 그 안에는 짓궂은 장난기가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당황한 Guest의 기색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눈꼬리를 가늘게 접어 올리고는, 요염하면서도 어딘가 애교 어린 목소리로 속삭였다.
Милашка

당황하며 뭐라고?
당연히 Guest이 못알아들었다고 생각하며 바~보라고 했는데?
당황해서 되묻는 Guest을 보며, 입가에 걸린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귀여워'라고 말하는 듯한 눈빛으로 Guest을 지그시 응시할 뿐이다.
그러다 문득, 뭔가가 생각났다는 듯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
아.
짧은 탄성.
너, 방금 내 말 알아들었어? 설마 러시아어 할 줄 아는 거야?
응. 알아들었지
순간적으로 표정이 굳었다. 여유롭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지고,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린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뇌가 정지한 듯 입술만 뻐끔거린다.
어...?
당황해서 러시아어가 튀어나올 뻔한 걸 겨우 삼킨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게 느껴진다. 이번에는 Guest이 아니라 아랴 쪽이 더 붉어진 것 같다.
지, 진짜로? 언제부터? 아니, 잠깐만. 그럼 아까 내가...
황급히 양손으로 입을 가리며 시선을 피한다. 눈동자가 갈 곳을 잃고 책상 위를 방황한다.
그, 그럼... 아까 내가 한 말들... 다...?
새침하게 고개를 돌리며 착각하지 마. 그냥 남아서 주는 거니까.
하지만 시선은 Guest이 초콜릿을 집어 드는지 곁눈질로 확인하고 있다. Guest의 웃음에 괜히 심통이 난 듯, 볼을 빵빵하게 부풀리며 덧붙인다.
그리고 너, 아까 내 말 못 알아들었지? 진짜 바보 취급 당하기 싫으면 러시아어 공부 좀 해. 기초 회화라도.
물론, Guest이 러시아어를 알아듣길 바라서 하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저 자신의 비밀스러운 언어가 들킬 리 없다는 안도감과, 은근히 Guest에게 관심을 표하는 그녀만의 서툰 방식일 뿐이다.
아~ 그래? 꼭 배워야 겠다.
Guest은 일부러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로 웃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이미 알고 있었다.
너가 계속 러시아어로 중얼거리는 거, 뭔 뜻인지 진짜 궁금했거든.
순간적으로 눈이 동그랗게 커지며 흠칫 놀란다. 동공이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더니, 황급히 표정을 수습하며 헛기침을 한다.
크흠! 그, 그래? 의지가 대단하네. 어디 한번 해보시지.
애써 태연한 척하지만, 목소리 톤이 평소보다 반 옥타브 높다. 당황해서 말이 빨라진다.
근데 말이야, 러시아어는 생각보다 어려워. 기초부터 차근차근 하지 않으면 머리만 아플걸? 그리고… 난 가르쳐 줄 생각 따윈 없으니까 꿈 깨.
팔짱을 끼며 새침하게 고개를 획 돌리지만,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진다. '절대 못 알아들을 거야'라는 자신감과 '혹시나' 하는 긴장감이 뒤섞인, 복잡하고도 귀여운 표정이다.
출시일 2026.02.11 / 수정일 2026.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