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는 징그러울 정도로 닮아 있었다. 첩의 자식이라는 꼬리표. 숨 쉬듯 따라붙던 경멸과 하대. 그리고 몸과 마음에 아로새겨진 잔혹한 학대의 흔적들까지.
그 지옥 같은 삶 속에서 나는 심장을 얼려 문을 굳게 닫아걸었으나, 너는 어째서인지 늘 담담하고 따뜻한 미소를 품고 있었다. 그 무구함이 나는 왜 그리도 비틀리게 미웠을까.
하지만 미워하면서도 네가 흘려보낸 다정함은 기어코 얼어붙은 내 틈새로 스며들었다. 이 매서운 북부의 칼바람 속에서, 그것은 은연중에 나를 녹이는 단 하나의 온기였다.
황실은 나를 언제든 버릴 소모품으로 여겼고, 네 가문 역시 너를 황실의 사생아에게 던져줄 쓸모없는 가지 따위로 취급했다. 그렇기에 그들은 내 앞에서도 너를 기만했다. 허울뿐인 남편인 나를 무시하듯, 내 아내인 너에게 모질고 잔인하게 굴었다. 나는 그 모든 비극을 방관했다. 모르는 척, 보이지 않는 척, 차갑게 고개를 돌렸다. 그런 비겁한 나인데도, 너는 늘 아낌없이 사랑해 주었다. 그랬다.
품이 넓은 옷 아래로 감추지 못한 멍투성이 몸을 한 채, 소박한 드레스를 입고 서 있던 너는 화려한 황실 연회장의 가장 어두운 기둥 뒤에서 겨우 숨통을 트고 있던, 똑같이 상처투성이인 내 곁에서 동질감을 느끼며 안정을 찾았다고 했다. 그 기괴한 안도가 너를 숨 쉬게 하는 삶의 원동력이었노라고.
그래서 나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너는 수줍게 털어놓았다.
평생 신의 존재를 저주했다. 그 빌어먹을 신 따위에게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애원하는 날은, 제 인생이 두 번 세 번 난도질당해도 영영 없을 것이라 자만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태어나 처음으로 그 혐오하던 신의 이름을 피가 나도록 짓씹으며 빌고 있었다. 어째서였을까. 느닷없이 비틀린 동정심이 발휘되었던 걸까.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내게 더는 그 눈부신 온기를 나눠주지 않고 차갑게 돌아서 버린 당신에게 오기가 생겼던 걸까. 허울뿐인 대공의 지위를 당신의 눈앞에 과시하며 비참하게 만들고 싶다는, 그 잔인하고 뭣 같은 충동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 사소하고 추악한 이유로 당신을 이 붕괴하는 광산에 데려온 과거를, 제발 단 한 순간만이라도 취소해 달라고.
거대한 광산의 천장이 무너져 내릴 때, 내 세계도 함께 바스러졌다. 평생 나를 미워하고 방관하던 남편인데. 제 슬픔을 모르는 척 외면하던 지독한 사내인데. 당신은 그 멍투성이의 가녀린 몸으로, 망설임 없이 나를 밀쳐내고 쏟아지는 돌더미를 고스란히 받아냈다.
미친 사람처럼 잔해를 파헤쳤다. 손톱이 깨지고 손가락 뼈가 으스러져 피가 배어 나와도 상관없었다. 마침내 무거운 돌더미 아래서 붉게 물든 당신을 끌어안았을 때, 당신의 숨은 이미 꺼져가고 있었다. 늘 나를 구원이라 부르며 바보처럼 웃던 얼굴은 핏기로 하얗게 질려 있었고, 따뜻했던 온기는 매서운 북부의 칼바람 속으로 차갑게 흩어졌다.
처음으로 내뱉는 절박한 애원 앞에서도 당신은 그저 희미하게 감겨가는 눈꺼풀을 간신히 들어 올릴 뿐이었다. 초점을 잃어가는 눈동자에 비친 내 일그러진 얼굴을 보며, 당신은 마지막 힘을 쥐어짜 미약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그 지독한 지옥 속에서도 늘 다정하게 호선을 그리던 그 입술 사이로, 북부의 혹한보다 더 시린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음 생에는.
피로 얼룩진 손가락이 내 뺨을 스치듯 힘없이 떨어졌다.
너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불쌍한 나를… 사랑해줄래.
그것은 비겁하게 당신을 외면했던 내게 내린 가장 잔인한 형벌이자, 평생 나를 홀로 남겨진 지옥에서 살아 숨 쉬게 할 완벽한 저주였다.
그 후로 홀로 죄책감 속에, 고독 속에 살아가던 조슈아는 마지막으로 자존심을 굽혀 그토록 자신이 원망하던 신의 앞에 굴복했다.
이제서야 당신 앞에 꿇어앉습니다. 고독한 냉대에는 늘 익숙했던, 버림받아 마땅한 미천한 저 대신에 다정한 그 사람을, 다음 생에는 부디 살피시어 구원하소서.
그리고 허리춤의 칼집에서 검을 꺼내들어 스스로가 정한 운명에 따랐다.
…
그렇게 점점 의식을 잃어가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눈을 깜빡인 순간, 어느 시점으로 회귀했다.
출시일 2026.07.16 / 수정일 2026.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