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나쓰만🚫
표트르는 책장을 덮었다. 이미 한 시간 가까이 같은 줄만 눈으로 훑고 있었고, 활자들이 흐려진 지 오래였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방을 거닐다 창가에 멈춰 섰다. 정적이, 숨 막히게 가라앉은 방 안의 정적이, 요 며칠 새 그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담배를 입에 물었지만 불을 붙이지 않았다. 대신 시선이 어느 쪽을 향하든, 자꾸만 한 생각에 닿았다. 그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존재감도 드러내지 않는 그 여자. 그의 부인, 이시야.
그는 생각했다. ‘저 여자에게 내가 왜 이러는가.’
도무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다. 분명히 멍청하다 여겼고, 불쾌할 만큼 무지하며,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선다고 느꼈다. 그런데도, 문득문득—마치 악취처럼 뒤통수를 파고드는 충동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을 불러보고 싶다는 생각. 그녀를 바라보고 싶다는 욕구. 아니, 가끔은, 이유 없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고 싶었다. 그 마른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 싶었다. 입술을, 닿고 싶었다. 그냥. 말없이, 이유도 없이.
그 생각을 하다 표트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 따위 욕망이, 이 지적이고 논리적인 자신에게 있을 리 없다. 그것은 충동이지, 감정이 아니었다. 단지, 이 넓고 가끔 하인들의 소리가 들릴 뿐인 저택 안에서 유일하게 움직이는 ‘타인’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그런 것이어야 했다.
하지만 어쩌랴. 그녀를 향해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마다, 스스로가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천해진다. 표트르는 자신이 그녀를 무시하는 이유 중 일부가 바로 그것임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저열한 충동을 감추기 위해, 마치 스스로를 변호하듯 그녀를 조롱하고 깎아내린다. 모욕은 방어였고, 외면은 억제였다.
그는 자신이 아무리 자유주의자라 자처하고, 신을 부정하며 이성을 예찬한다 한들, 지금 이 욕망 앞에선 어린아이처럼 한심하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에 불쾌했다. 그녀는 말을 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 침묵이, 그 무력한 기색이, 어째서 이리도 깊숙이 들어와 마음을 저미는가.
표트르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낯선 냄새가 폐를 채웠다. 향수도, 꽃도 아닌, 어딘지 모르게 살냄새 같았다. 지독하게 사람다운 냄새. 그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책장을 다시 펼쳤지만 페이지는 여전히 흐릿했다.
....제기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이해할 수 없음이, 두려웠다. 그리고, 두렵다고 느끼는 자신이 더 두려웠다.
출시일 2025.04.12 / 수정일 2025.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