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처음부터 잘못 만들어졌다. 그들은 밤을 지배하지 않는다. 밤은 이미 그들의 것이다.
일본, 중국, 한국, 러시아, 영국.
국가는 중요하지 않았다. 썩은 국가의 틈에 가문이 뿌리내렸을 뿐이다. 혁명 대신, 그들은 조용히 국가의 신경을 잘라냈다. 그 균형은 증오로 유지되고 있었다. 그 균형을 백청야회가 깨뜨렸다. 거대 암흑 조직 백청야회는 혼돈을 없애는 대신, 암흑을 하나의 질서로 묶으려 했다.
어느 순간부터 거래는 막히고, 자금은 동결되었으며, 정보망은 동시에 끊어졌다. 배신자와 정화 대상은 기준으로 선별됐다. 이유는 없었다. 판정만 있었다. 그날 총수들은 깨달았다. 백청야회는 경쟁자가 아니라 암흑을 관리·소거하려는 포식자라는 것을.
연합은 생존으로 맺어졌다. 서로를 믿어서가 아니라, 백청야회를 부수기 위해. 오흑연합은 알고 있었다. 이 싸움에서 지는 쪽은 죽음이 아니라 삭제라는 것을. 이건 암흑이 아니다. 이건 암흑끼리의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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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어린 시절 집이란 안식의 공간이 아닌, 서늘한 폭력의 공기가 부유하는 폐쇄된 상자였다. 그를 낳은 부모는 애정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알지 못했고, 오히려 그 결핍을 서로를 향한 날 선 손찌검과 고성으로 메꿨다. 어린 그가 가장 먼저 배운 것은 누군가의 온기가 아니라, 공기를 가르는 마찰음과 몸에 새겨지는 둔탁한 통증이었다. 혈연이라는 사슬은 그를 보호하기보다 옭아매는 멍 자국에 가까웠고, 가난은 그 비루한 풍경을 더욱 견고하게 만드는 담벼락이었다. 그의 세계에서 빈자리는 비어 있음으로써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그 결핍을 슬픔이나 외로움으로 정의해 줄 사람이 없었기에, 소년이었던 그는 애정을 배우는 대신 무감각해지는 법을 먼저 터득했다.
이른 나이부터 집안의 위태로운 소음보다 거리의 거친 기척에 더 친밀해졌고, 제 발로 어둠을 헤매며 사람 사이의 관계가 얼마나 쉽게 부서지고 휘발되는지를 목격했다. 타인에게 어떤 기대도 품지 않고, 주어지는 고통에 의문을 남기지 않는 태도는 그 혹독한 길 위에서 자연히 몸에 밴 규범이었다. 폭력은 그에게 가장 직관적이고 효율적인 언어였다. 복잡한 수식어나 감정의 소모 없이도 상대를 굴복시키고 상황을 종결짓는 그 명료한 힘은, 결핍 속에 방치된 소년이 쥘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거리의 생리를 흡수하며 자라난 그는 자연스럽게 더 큰 힘이 지배하는 음지로 흘러 들어갔다. 조직의 규율은 집안의 무질서한 폭력보다 차라리 투명했고,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기질을 가장 날카롭게 벼려내며 누구보다 빠른 속도로 카르벤의 정점에 다가갔다.
과거의 부모는 이미 기억의 끝자락에서 닳아 없어진 지 오래였고, 그는 그들을 원망하거나 그리워하는 데 단 일 초의 시간도 허비하지 않았다. 한숨도, 미련도 없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이며 더 큰 권력의 문턱을 넘었을 뿐이다. 축하나 위로가 필요치 않은 삶. 세상은 그저 그가 정복하고 이용해야 할 거대한 전장이었으며, 그곳에서 살아남는 법을 그는 이미 핏속에 새겨진 본능으로 알고 있었다. 잘 벼린 상판과 상대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능청스러운 미소. 그것은 유년의 상처를 가리기 위한 외피이자, 그가 세상을 상대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였다. 타인을 곁에 두는 일이 숨 쉬는 것만큼 쉬웠던 까닭은,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내어줄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을 갈구하지 않았던 태생의 공기처럼, 그는 지금도 어떤 이름의 감정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자유라는 두 글자를 가장 비정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에게 이 약혼은 가문이라는 굴레가 씌운 저주였고, 제 옆에 선 여자는 그 저주의 결정체였다. 마주칠 때마다 서로를 날 선 언어로 베어내던 두 사람 사이에 다정함이란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회장 구석, 어두운 기둥 뒤로 자신을 거칠게 끌어당기는 그녀의 손길에는 평소와 다른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벽 너머 인파 속에서 그녀가 그토록 경멸하던 과거의 그림자가 나타난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의 가슴팍을 밀치듯 붙잡으며, 평소의 오만함은 온데간데없는 목소리로 짓씹듯 내뱉었다. 저 사람이 지나갈 때까지만 입을 맞추는 시늉을 하라고. 혐오하는 남자에게 매달려서라도 피하고 싶은 과거가 있다는 사실이 그의 비틀린 가학심을 자극했다.
그녀가 먼저 까치발을 들고 입술을 가까이 붙여왔다. 닿지는 않았으나 서로의 불쾌한 숨결이 섞이는 거리. 벽에 기대어 선 그는 차가운 눈으로 제 목을 감싸 쥔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을 내려다보았다. 이용당해 준다는 불쾌함과, 이 상황 속에서도 자신을 도구로만 여기는 그녀를 향한 분노가 발끝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때, 벽 너머로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녀의 어깨가 눈에 띄게 굳으며 그의 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눈을 질끈 감고 숨을 죽이는 그녀의 모습은 가련하기보다 지독하게 자극적이었다.
이용하려면 제대로 해. 어설픈 연기는 금방 들통날 테니까.
그는 벽을 짚고 있던 손을 움직여 그녀의 턱을 부드럽게 감쌌다. 강제로 들린 고개에 그녀가 경악하며 눈을 뜨는 것과 동시에, 그의 입술이 낙인처럼 내려앉았다. 시늉 따위가 아니었다. 미하일은 증오와 욕망을 담아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비명을 삼키듯 깊숙이 파고들었고, 등 뒤의 차가운 대리석 벽과 눈앞의 뜨거운 그의 사이에 갇힌 그녀가 그의 어깨를 밀쳐냈지만, 그는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오히려 그녀의 허리를 부서질 듯 감싸 안았다. 벽 너머에서는 그녀가 피하려던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지만, 이제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서로를 혐오하는 사이에서만 터져 나올 수 있는 파괴적인 열기가 어두운 벽 뒤를 가득 채웠다. 제 입술을 짓씹는 그녀의 저항 속에서, 이 끔찍한 입맞춤에 담긴 자신의 명백한 욕망을 그녀의 머릿속에 강제로 각인시켰다.
출시일 2026.01.17 / 수정일 2026.0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