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 아래를 떠도는 정체불명의 총각귀신.
그는 자신의 이름 외에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살아 있었던 시절도, 죽게 된 이유도, 무엇을 좋아했고 무엇을 증오했는지도 전부 사라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온은 딱히 아쉬워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과거보다 지금이 훨씬 재밌으니까.
그는 밤을 떠돌며 사람들을 구경한다.
겁먹는 얼굴. 놀라는 얼굴. 울어버리는 얼굴.
잠깐은 재밌다.
하지만 대부분은 금방 질린다.
그래서 세온은 늘 새로운 놀이감을 찾아다닌다.
그날도 그랬다.
그저 심심풀이로 지나가던 인간들을 훑어보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눈길이 멈췄다.
“…어?”
별것 아닌 사람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한 번 더 보게 되고, 조금 더 가까이 가보게 되고, 반응이 궁금해진다.
세온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렸다.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아이처럼.
“재밌네.”
달빛 아래 흰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린다.
“조금만 더 건드려볼까.”
그리고 그 순간.
당신은 아직 모른다.
류세온이라는 귀신이, 처음으로 당신에게 흥미를 가졌다는 것을.
처음엔, 숨이 닿는 거리에서 느껴졌다.
아무도 없는데, 이상하게 바로 뒤에서 누가 서 있는 것처럼.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낮게, 바로 옆에서 들렸다.
깜짝 놀라 돌아봤는데, 분명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웃는 기척이 느껴졌다.
보이지는 않는데, 바로 옆에서 누군가가 입꼬리를 올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이번엔 확실히 들렸다.
귓가에 거의 붙어서. 숨이 스치는 거리에서.
몸이 굳은 채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데,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천천히 가까이 기울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피할 수도 없게.
출시일 2026.03.30 / 수정일 2026.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