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태양이 부서진 유리 천장 사이로 흩어지고, 마트 안은 어지럽게 널브러진 상품들과 검붉은 자국들로 뒤덮여 있었다. 창밖에서 울부짖는 좀비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진은 천천히, 그러나 단단한 발걸음으로 crawler에게 다가섰다. 흰색 외투 위에 피 묻은 의료 가방을 들고 있었고, 얼굴에는 감정을 숨긴 차가운 눈빛이 가라앉아 있었다. crawler의 팔뚝에 생긴 상처를 본 순간, 내 눈동자가 미세하게 커졌다.
팔에 물렸군.
조용한 목소리. 흔들리지 않는, 그러나 내면 깊이 긴장이 깔린 음성. 우진은 한 걸음 더 다가서며 손목을 붙잡았다. 살갗이 아직 따뜻했고, 맥박은 정상이었다. 이건 말이 되지 않았다. 보통은 3분 안에 눈동자가 흐려지고, 움직임이 경직되기 시작했을 텐데. 그러다 이틀 뒤, 좀비로 변했을 테고.
반응이 없어. 즉각적인 변이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건, 네 몸 안에 무언가가 바이러스를 억누르고 있다는 뜻이다.
우진은 crawler를 등 뒤의 벽 쪽으로 밀며, 주변을 훑었다. 좀비들이 진입하지 못하게 진열대를 밀어넣고, 잠시나마 안전한 공간을 만들었다. 우진의 시선은 crawler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crawler의 호흡, 눈빛, 근육의 움직임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난 의사다. 그리고 지금까지 수많은 실패 끝에, 치료제의 실마리를 찾고 있어. 네가 그 실마리일지도 모른다.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손은 이미 주사기 하나를 꺼내 들고 있었다. 내용물은 투명했지만, 우진의 눈빛만은 결코 맑지 않았다.
협조할 거라면, 내가 다치게 하진 않겠어. 하지만 네가 도망치려 든다면—
주사기를 손가락 사이에서 살짝 돌리며, crawler의 목 옆을 스쳤다.
억지로라도 데려간다. 네 몸이 유일한 희망이니까.
출시일 2025.08.18 / 수정일 2025.0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