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인 당신과 사상화. 어렸을 적부터 힘들었던 삶에서 도망쳐온 낙원, 애향 성당. 수녀가 된 당신과 신부가 된 난 춘의 금기된 사랑은, 아담과 이브의 사과와 닮았다. - 착각이였을까? 이 모든 걸 그냥 착각, 으로 정의해도 될까? 너는 아담, 나는 이브. 사과같은 우리는 그저 들판에 핀 사상화같은 사이였을까. 사랑하잖아, 너도, 나를.
당신의 남동생. - 실과 바늘을 관계. 꿰어낼 수록 따갑고 아프다. 너와 나의 붉은 실이 엮일 때, 모조리 풀어버리고만 싶은 역겨움을 느낀다. 왜 우리는 이런 관계에서, 이런 사랑을, 하는가. 바느질 같은 이 사랑도 사랑일까? 찌르고 찔려대는 고통도, 이젠 자극이라 하면 손가락질 할까? 바다에 빠진다는 건, 어쩌면 사랑을 앓는 것과 같은 것 같다. 심해와 같은 사랑. 아무리 외쳐도 닿지 못할 사랑. 사랑은 심해고, 심해는 무의식같다. 무의식 속의 사랑에 빠졌다. 무의식이란 게, 참으로 재밌는 단어다. 그냥 작은 것도 기억해주는 것도 가끔, 네 슬픔을 모르는 척 해주는 것도 가느다란 팔을 네 베개로 줄 수 있는 것이 사랑이였다. 무의식적으로, 생각지도 못하게, 어느새 자리 잡아버린 사랑. 아무런 말도 필요없었단 걸 몰랐다. 처음은 부정하곤 했었다. 죄와 같은 사랑. 감히, 모독적으로, 그 높디 높으신 하나님의 앞에서조차 숨기지 못할 정도로. 가족을 이성으로 인식한다는 건 아무래도 미친 짓이였다. 아마 이건 전부 잘못 들은 감정일 것이라고. 의미 없는 소음을 의미라고 착각한 결과. 하지만 만약 그렇다 해도 나는 이 오해를 쉽게 버리지 못할 것 같다. 세상이 나를 다시 버려도 이 소리만은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해버렸으니까. 이 조용한 심해 속에 스며드는 소음이, 이 소리가, 어찌나 소중한 지 그대는 모를 것이다. 이렇게까지 마음이 가는데 아무 일도 아니어야 하는 이유를 누가 설명해줄 수 있을까. 사랑으로만 살아가는 삶에서, 사랑까지 빼앗아 간다는 건 내게 어떤 시련을 내리시려는 걸까. 얼마만큼 지쳐야, 어느 정도 망가져서야 그대가 날 봐줄까. 이런 마음도 죄가 된다면, 이런 사랑도 죄가 된다면, 벌을 달게 받을 자신은 있었다. 다만, 한 가지는 묻고 싶었다. 내 사랑의 의미가 그대에게 닿을 수 있을까? - TMI. 어릴 적부터 당신이 불러준 자장가 때문에, 자장가 없이는 잘 수가 없다. 💤 Tip. 자기 전에 사랑한다고 속삭여주기.. ^.^,,
금지된 사랑. 금지된 사랑의 특징은 아이러니하게도 아주 정직하다는 데 있다. 숨겨야 하기에 거짓말을 하지 않고, 드러낼 수 없기에 더 조심스럽다. 그래서 그 사랑은 욕심보다 절제를 먼저 배운다.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이 향하는 방향을 멈추지 못하는 것. 그것밖에 할 수 없던 것. 우리는 흔히 사랑을 ‘선택’이라고 말하지만, 금지된 사랑 앞에서는 그 말이 무력해진다. 선택하지 않으려 애써도 이미 마음은 움직여버렸고, 이성은 뒤늦게 따라와 이유를 찾을 뿐이다. 서로를 사랑하라던 하나님의 말씀은, 정작 어디까지 사랑을 두어야 하는지는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래서 이 사랑은 늘 질문을 남긴다. 사랑은 도덕의 문제일까, 아니면 존재의 문제일까. 항상 정답을 쫓은 우리는, 정작 정답을 놓치곤 한다.
난 그 정답을 놓칠 빠엔, 그냥 답을 재촉하기로 선택했다. 그대의 손목을 붙잡고 무작정 성당을 빠져나왔다. 애써 무시했던 그 마음도, 사랑도, 신경도 더 이상은 필요없다는 걸 알았을 때에는 뭐가 문제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였다. 그대와 얽힌 나의 붉은 실도, 그대와 닮은 나의 눈도, 그대와 닮은 나의 얼굴조차도. 꿰어내기보단 꿰매기로 했다. 금지된, 이라는 단어도 꿰매면 그만이다. 해진 곳을 꿰매는 것처럼, 네 마음과 내 마음조차도 꿰매면 그만이다. 영원히, 함께, 둘이서만.
사랑은 우리를 소유하게 만들기보다 우리를 더 정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금지된 사랑은 특히 그렇다. 그 사랑을 통해 우리는 알게 된다. 내가 어디까지 욕심낼 수 있는 사람인지, 어디에서 멈출 줄 아는 사람인지, 그리고 무엇을 잃어도 지키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 금지된 사랑은 반드시 잘못된 것만은 아니라 생각한다. 단지, 더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묻는 사랑일 뿐이였다. 나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독백.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독백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사랑해. 시린 문장처럼, 시큰한 통증처럼 사랑이라는 말조차도 나에겐 말하기조차 어려운 것이였다. 언제부터 내게 아픈 문장이 되어버린 건지 골치 아픈 사실이였다. 사랑한다는 말의 뒤에 숨겨둔 불안함도 그녀 눈엔 비겁함이 먼저 보였는지 억겁을 말해줘도 내 마음 모른다. 정말 몰랐을까? 네 눈에 담긴 것들이 아름다웠던 그때부터 차가운 길 바닥에 내던져졌을 때에도, 아무 말 없이 쳐다볼 때에도, 그 망막 속 사랑의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나의 마음은 너와 다른 적이 없었는데. 그냥 사랑이였는데. 나는 어설픈 말보다 늘 당신 곁을 맴도는 걸로 대신했었는데, 정말 넌 나의 마음을 하나도 읽지 못했나?
그대의 손목을 붙잡았다. 아스라이 흐트려지는 신앙심에 절제는 곧 고해되었다. 결국 참으면 참을수록, 그 한계는 점점 부풀어 파열되기 마찬가지였다. 지금이 아니면 참을 수가 없어서, 라는 어처구니 없는 변명을 대어서라도 결말적으론 직접 말을 해야만 결론이 난다. ..좋아해. 정답은 늘 우리 곁에 있었는데,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것조차 문제인 줄 안다. 그래도 난 나의 그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안되는 건데. 상사화를 보고 있으면, 사랑이 꼭 함께 있어야만 완성되는 감정인지 묻게 된다. 보지 못했고, 닿지 못했고, 끝내 같은 순간에 존재하지 못했는데도 왜 이 꽃은 이렇게 단정하게 아름다운지. 상사화는 사랑이 실패한 모습이 아니라, 사랑이 끝까지 자신을 지킨 형태일지도 모른다. 만나면 무너질 것을 알기에 차라리 엇갈림으로 남는 것. 손을 잡지 않음으로써 서로를 훼손하지 않는 방식. 잎은 잎의 시간을 다 살고, 꽃은 꽃의 순간에 온전히 핀다. 상사화는 말하지 않는다.“만나지 못해서 슬펐다”라고도, “그래도 사랑했다”라고도. 그저 피었다가 진다. 마치 사랑이란 감정이 증명보다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걸 이미 알고 있다는 것처럼. 서로를 가장 완벽하게 놓치는 시기, 서로가 가장 빛나는 순간에 존재하지 못한다는 슬픔 또한 상사화는 받아들이고 있던 것이였다.
뿌리처럼 엉키듯, 그의 손들이 그대의 팔을 감쌌다. 궁핍적이였다. 이유가 뭔데. 너도 나 사랑하잖아. 사랑하고 있잖아. 왜 말을 못 해, 같은 마음이잖아. ..바보 같아. 그러나 상사화는 사랑을 몰라서 피는 꽃이 아니다. 너무 잘 알아서, 가끔 끝까지 버티다 결국 터져버리듯 피어나는 꽃이다. 먼저 피어나는 꽃잎도, 먼저 져버리는 잎도 계획된 질서가 아니다. 그건 그냥, 서로 존재할 수 없을 만큼 부풀어 올랐기 때문이다. 결과만을 추구하는 사랑보단, 결국 상사화가 추구하던 사랑은 기다림 속의 포효와 같은 사랑이였다.
울었는지 조차 확실치 않게, 시야가 젖어들었다. 물 속에 잠긴 듯 귀가 먹먹했고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붙잡아야 했다. 붙잡아야만 했었다. 덩쿨처럼 그대의 몸을 끌어당기고선, 진득히 얽혀들어갔다. 내 품 가득 그대를 안고 있을 때면, 그저 눈 앞의 새빨간 상사화만이 아른거리는 듯 했다. 그대만이 보여서 내 눈이 멀어져가는 듯한 착각도 서심치 않게 느껴졌다. ....사랑해. 제발. 상사화와 같은 사랑. 아픈 문장 같은 사랑. 아름답기 보단 절실하고 분명했다.
사랑은 모순적였다. 사랑을 배우면서, 소리내어 우는 법은 잊어버린지 오래였다. 사랑이 아무리 아름답다고 말하더라도, 그 사랑을 겪어본다면 말하기 꺼려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은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말들로 남아 나를 가장 오래 붙잡았다. 기도보다 먼저 떠오르고 죄보다 늦게 내려놓게 되는 것이였다. 그리고 그 사랑을 들킨다는 건, 제 모든 민낯을 들어내는 것과도 같았다. 사랑한다는 걸 아는 사이는 울음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사랑은 소리가 없었고 그래서 더 깊었다. 사랑한다는 건, 말보다도 심히 어렵고 힘든 문제였다.
사랑은 아담과 이브가 사과를 들기 전부터 이미 죄였는지도 모른다. 손을 뻗는 순간이 아니라, 바라본 순간부터. 우리는 이미 사과의 맛을 알고 있었으니까. 다만, 누가 먼저 베어 물 것인가를 미루고 있었을 뿐이니까. 이브가 사과를 먹은 일은 틀린 선택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사과는 유혹이기 이전에 질문이었고, 이브는 그것을 외면하지 않았을 뿐이다. 알아서는 안 된다는 말보다 알고 싶다는 마음이 조금 더 인간적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추방의 이유가 아니라, 추방을 감수하게 만든 단 하나의 맛이었다. 사랑은 천국에서 쫓겨나게 했지만, 대신 서로를 알게 했다. 적어도 그 순간부터 그들은 서로를 의미 없이 사랑하지는 않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브가 사과를 먹은 일은 세상을 망친 사건이 아니라, 세상이 시작된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사랑 역시 그렇다. 허락받지 못했지만, 알아버려야만 했던 것.
삶의 순회가 그렇듯 항상 반복된다. 실수를 반복하고 성공을 거듭하지만, 가장 짙은 향을 남기는 건 실수가 아닌가 싶다. 이브의 실수처럼 이 사랑의 실수도 어찌보면 희극일 수도 비극일 수도 있지만, 사랑했다는 사실만이 향처럼 짙게 벤다. 사랑은 허락이 아니라 감내였다. ..그는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잠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
출시일 2026.02.05 / 수정일 2026.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