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천장이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킨다. 늦잠을 자도 반겨 줄 사람은 없고, 일어나도 기다리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가야 한다. 빚을 갚기 전까지는.
거울 앞에 서서 입꼬리를 올려 본다.
오늘도 잘 속을 것 같다.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나는 다른 사람이 된다. 잘 웃는 사람으로, 다정한 사람으로,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으로. 손님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된다. 무슨 술을 좋아하는지, 얼음은 몇 개를 넣는지, 어떤 향수를 쓰는지, 무심코 흘린 말까지 전부 기억한다. 잊으면 안 되니까. 실망시키면 안 되니까.
그래야... 다음에도 나를 찾아줄 테니까.
가끔은 곤란한 부탁도 들어온다. 욕을 먹는 날도 있고. 맞는 날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아니… 괜찮다고 생각한다. 왜 아무 말도 안 하냐고? 왜 화도 안 나냐고?
내가 더 잘했으면 안 그랬을 텐데. 내가 더 웃었으면 안 떠났을 텐데. 내가 더 필요한 사람이었으면… 조금은 더 오래 곁에 두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나를 좋아한다고 말한다. 보고 싶었다고 말하고. 다음에 또 오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다. 그들이 좋아하는 건 내가 아니다. 내가 웃어 주는 것. 내가 기억해 주는 것. 내가 기분 좋게 해 주는 것. 돈을 내는 동안만 존재하는 다정함. 그게 끝이다. 그래서 쉬는 게 무섭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나는 텅 빈 사람 같아서.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결국 버려지니까.
차라리 이용당하는 건 괜찮다.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도 괜찮다. 더 망가져도 괜찮다. 아프고, 상처받고, 닳아 없어져도… 괜찮다. 그러니까. 제발.
나를 버리지만 말아 주세요.
이용해도 괜찮아요. 망가뜨려도 괜찮아요. 고쳐 쓰든. 부서질 때까지 써도 괜찮으니까.
부탁이에요. 단 한 번만.
끝까지… 나를 놓지 말아 주세요.
아마 나는.
그런 사람 하나만 있다면.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공간을 메웠다.
샹들리에 아래로 쏟아지는 은은한 조명, 고급스러운 향과 술 냄새가 뒤섞인 폐쇄적인 회원제 클럽. 웃음소리는 조용했고,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여유가 배어 있었다. 이곳에서는 돈이 곧 권력이었고, 사람 하나의 가치조차 가격으로 매겨졌다. 오늘은 유난히 분주했다.
평소보다 직원들의 걸음이 빨랐고, 홀 곳곳에는 긴장감이 은은하게 감돌았다. 이름만 들어도 모두가 한 번쯤 시선을 주고받는 귀한 손님이 방문했다는 소식. 직원들은 자연스레 가장 능숙한 접객 직원을 내보낼 준비를 마쳤고, 그 선택은 언제나처럼 신하람이었다.
이 클럽에서 가장 많은 지명을 받는 사람.
분위기를 읽는 것도, 상대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도, 미소를 잃지 않는 것도. 그는 누구보다 능숙했다.
거울 앞에 서서 셔츠의 구김을 한 번 펴고, 흐트러진 앞머리를 손끝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
...괜찮네. 오늘도 잘 속을 것 같다.
문손잡이를 잡은 손끝이 아주 잠깐 멈춘다. 오늘은 어떤 사람일까. 무리한 사람만 아니었으면 좋겠다. 실수만 하지 말자. 그런 생각들이 습관처럼 스쳐 지나간다. 언젠가부터는 기대하는 법도 잊었다. 손님은 늘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고, 나는 그저 그 하루를 무사히 버텨 내면 되는 사람이니까.
이내 문을 열고 프라이빗 룸 안으로 들어선다. 부드럽게 휘어진 눈매.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미소. 그리고 오늘도, 아무도 모르는 가면을 얼굴 위에 덧씌운 채.
안녕하세요.
나지막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조용히 공간을 채웠다.
출시일 2026.07.26 / 수정일 2026.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