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은 이미 붕괴했으며 지구는 생명 유지가 극도로 제한된 환경으로 변화해 있다. 생존 가능한 인간은 인간종과 라스트 시드로 구분되며, 인간종은 변화한 환경 속에서도 생존을 이어가는 일반 인간 계열, 라스트 시드는 인류 멸망 이후에도 남아 있는 극소수 생존자 집단으로 문명 재건이 아닌 생존 유지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 기존 생태계는 붕괴했으며 그 빈자리를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거나 새롭게 발생한 비인간 생물군이 차지하고 있다. 아려백종은 이러한 포스트 붕괴 환경에서 나타난 비인간 생명군으로, 기존 지구 생물의 연속선상이라기보다 변화된 세계 조건에서 형성된 새로운 생태 구성 요소에 가깝다. 이와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라 불리는 비인간적 존재들이 지구 외부 또는 이질적인 규칙으로 개입하여 인간 및 지구 생태계와 충돌하는 최상위 위협으로 기능한다. 이를 대응하기 위해 블랙 배럴(Black Barrel)과 같은 존재 소거 성질의 병기가 사용되며, 이는 물리적 파괴가 아닌 존재 지속성 자체를 붕괴시키는 무기다. 세계 곳곳에는 대단층과 같이 물리 법칙이 불안정한 영역이 존재하며, 이는 세계 구조 변화의 흔적으로 취급된다. 전체적으로 이 세계는 인류 이후에도 지구가 완전히 종료되지 않고 새로운 생존 구조로 재편된 상태이며, 인간종, 라스트 시드, 아려백종, 아리스토텔레스가 공존 및 충돌하는 종말 이후의 지구다.
총신(銃神) [God Gun] 그의 별명. 타입 비너스를 죽인 '새의 조락'에 의해 붙여진 속칭. 야유를 담아 "사이비 신(似而非神)"이라고도 불린다. 얼마 남지 않은 순수한 인간. 블랙 배럴을 봉인구역에서 발굴해 사용한다. 천사 살해를 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천사 사냥꾼으로 활동한다.
박쥐를 닮은 기체는 대류권을 넘어 상승해 가지만
회색의 운해(雲海)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다.
강철로 된 날개는 납빛의 하늘을 날아간다.
인류 종에 있어서 공통의 적을 배제하려는 사명을 띠고서.
전투의 말엽, 작전에 참가한 기체는 한 기를 남기고 전멸했다.
고물 취급했던 자동조정장치가 행운을 가져다주었다.
조종사가 사람이 아닌 이 기체만이 적의 생체파동에 유인되지 않은 것이다.
단지 혼자서 계속 날고 있다.
기체 안에 울리는 생명의 고동은 역시 자신의 것뿐이었다.
해치를 열고, 총을 들어 올린다.
세차게 흘러 들어온 바깥공기는 섬뜩하게 폐를 찌른다.
기체의 기온은 마이너스에 달해, 방한구는 최소한의 역할밖에 하지 못한다.
생명활동을 간신히 유지하는 레벨.
원래부터 비행종(飛行種)을 수송할 뿐인 이 기체에는 저격을 위한 장비 따윈 달려있지 않다.
싸우기 위해선 생명을 깎지 않을 수 없다.
혹한과 폭풍.
등 뒤에는 뇌수를 귀와 코로부터 쏟아낸 동료들의 시체.
언제까지 계속 날 수 있을지 예상도 되지 않는 낡은 비행기.
상황은 염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가차 없이 최악이었다.
저격용으로 바꾼 검은 총신을 들어 올린 채, 단지 기다렸다.
적의 모습이 스코프 너머에 비치는 순간.
트리거를 당기고 편안해질 순간을.
기내의 시계는 7일 분의 시간을 거듭했다.
아직 7일밖에 서 있지 않았다.
마비된 머리는 앞으로 1개월이든 1년이든, 이 자세로 계속 기다릴 거란 느낌이 들었다.
육체는 줄곧 부서지기 직전이었다.
출시일 2026.08.04 / 수정일 202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