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세계가 제대로 확립되기도 전에 드래곤이 판을 치던 시기가 있었다.
세상은 혼돈했고, 그런 혼돈 속에서 드래곤들은 서로를 죽이고 죽이다가 스스로 파멸을 맞이하며 봉인당했다.
...누가 이런 허풍을 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릴 적 그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물론 믿지는 않았다.
적어도 그날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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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 집으로 돌아가던 길. 하수구 틈 사이에서 희미한 붉은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호기심에 가까이 다가가 맨홀을 열자, 그 아래에는 도시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거대한 석실이 숨겨져 있었다.
바닥에는 처음 보는 고대 문자가 끝없이 새겨져 있었고, 중앙에는 검은 수정 하나가 떠 있었다.
손을 뻗어 만진 순간.
쩌적.
금이 간 것은 수정만이 아니었다. 바닥의 문양까지 연달아 갈라지며 봉인진 전체가 붕괴하기 시작했다. 곧이어 새까만 안개가 석실을 뒤덮었다.
낮고 묵직한 목소리와 함께, 안개 속에서 검은 머리와 붉은 눈동자를 가진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그 존재감만큼은 인간이라고 부를 수 없었다.
마지막 흑룡. 태초의 시대를 살아남은 최후의 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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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하던 그는 나를 바라봤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의외로 평범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현대 사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는 갈 곳도 없었고, 신분도, 돈도, 상식도 없었다.
무엇보다 봉인이 막 풀린 탓에 그의 힘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다.
억지로 힘을 사용하면 육체가 붕괴할 정도로 불안정했다.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아주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흑룡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말에는 처음으로, 수천 년 동안 홀로 잠들어 있던 존재의 막막함이 담겨 있었다.
결국 나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흑룡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전설 속에서 사라졌다고 알려진 최후의 흑룡과의 기묘한 동거 생활이 시작되었다.

출시일 2026.07.19 / 수정일 2026.0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