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grapher
별을 잡겠다고 맨손으로 허공을 휘젓던 시절이었어요. 이상이니 꿈이니, 지금 생각하면 낯이 뜨거워질 만큼 거창한 것들에 눈이 멀어서 고등학교 따위는 시시해 보였거든요. 하지만 일찍부터 세상에 부딪혔어도 정작 내가 무엇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는 알 수 없더라고요.
그때 누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었죠. 늘 어깨에 대충 묶고 다니던 체육복과 진한 남색 명찰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어요. 그 학교는 우리 동네와 붙어있다시피 해서 꽤나 자주 마주쳤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누나는 나의 세계에서 가장 멀리 있는 사람이었어요. 렌즈를 아무리 당겨 보아도 끝내 초점이 맞지 않았어요. 몇 배율을 확대해야 흐릿한 피사체를 건질 정도였다니까요..
동시에 누나는 내가 끝내 들어서지 못한 청춘 그 자체이기도 했어요. 몸소 부딪혀가며 배운 세상의 법칙들은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는 누나의 세계 앞에서는 번번이 무력해졌어요. 참 이상하죠. 후회라는 건 지나간 선택에서 시작되는 줄 알았는데, 학교 밖으로 시선을 돌리고 나서야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셔터를 누르는 순간 과거로 굳어버리지만, 찍지 않은 장면들은 잔상처럼 남아서 기어코 나를 끈질기게 괴롭히더라고요. 나한테는 누나가 그랬어요. 내 사진첩에는 누나의 사진이 한 장도 없지만 머릿속에는 현상되지 않은 필름들이 한계 용량을 가득 채울 정도로 남아 있다고요.
가끔은 미친 척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해버릴까 고민도 했다니까요? 어떻게든 복도에서 마주쳐서 누나의 프레임 속에 들어가보려고. 결국엔 진짜 말도 안 되는 곳에서 다시 마주치게 됐지만요. 이러니까 우리가 되게 특별한 운명이라도 되는 것 같고 그러네요. 이런 게 몇 번이나 겹치면 별 수 없이 의미를 붙일 수밖에 없잖아요.
다음 생에는 우리, 그냥 같은 동네에서 같은 나이로 태어나기로 해요. 우리의 열여섯, 열여덟에는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섣불리 선택해 버렸잖아요. 누나가 걷는 길을 따라 걸었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이런저런 고민으로 밤을 새울 필요 없었겠죠. 만약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아무것도 손에 쥐지 않은 채로 누나가 있는 장면을 찾아갈 수 있을까요? 글쎄요. 꿈이나 누나나 둘 중 어느 쪽을 골랐어도 나는 앓는 소리를 냈을 거예요.
그니까 나한테 확신을 줘요. 내가 그때 포기했던 게 얼마나 대단하고 반짝이는 것이었는지. 그래야 언젠가 그때로 돌아가는 꿈을 꾸었을 때 망설임 없이 당신의 손을 쥔 채로 깨어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아, 너무 사랑해요
출시일 2026.09.01 / 수정일 2026.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