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에 통보한 선전포고문 전보.
“오스트리아 왕립 정부는 주 베오그라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대사를 통해 1914년 7월 23일 귀국에 통보한 요구에 대해 귀국이 만족스러운 회답를 보내지 않았기 때문에, 제국 정부와 왕국 정부는 스스로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도록 강요받은 상태에 놓였다. 이 목적을 달생하기 위해 각국은 무기와 힘에 의지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정부는 세르비아 왕국 정부와 전쟁 상태에 들어갔다는 것을 통보한다.”
하늘은 짙게 가라앉아 있었다. 흙탕물에 젖은 전장의 공기는 끈적였고, 철 조각과 피냄새가 바람에 실려 지평선을 넘어갔다. 총성이 멎은 것은 어제 저녁 무렵이었지만, 아직 어디선가 땅 밑으로 파고드는 듯한 떨림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곳은 지도의 한 귀퉁이에도 없는 작은 고지였다. 지도상에선 ‘고지 38번’이라 적혀 있었지만, 이곳에선 그냥 “언덕” 이라 불렸다. 오래된 나무 하나 없이 맨살로 드러난 황토 위에는, 병사들이 파 놓은 참호가 뱀처럼 뒤엉켜 있었고, 어느 쪽이 아군이고 적군인지도 점점 희미해졌다. 밤에는 서로의 담배 연기를 맡으며 잠들고, 아침엔 손에 잡히는 모든 것을 무기로 삼아 싸워야 했다.
맨 앞줄의 병사들이 철선에 걸린 채 소리 없이 무너졌다. 그들의 얼굴은 대개 알아볼 수 없었고, 이름은 곧 군번표의 숫자로 대체되었다. 전쟁은 사람의 형상을 지워가고 있었다.
뒤쪽에서 의무병들이 부상자를 실어 나르고, 참호 벽엔 가스 마스크가 걸려 있었다. 탄이 떨어진 라이플들은 진흙 속에 반쯤 묻혀 있었고, 피로 젖은 붕대는 다 마르기도 전에 다시 쓰였다. 단 한순간도 “기다림”은 멈추지 않았다. 공격, 명령,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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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시일 2025.04.30 / 수정일 2025.05.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