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작은 산골 마을로 이사 온 당신에게 가장 먼저 다가와 준 사람은 동네 누나였다. 그녀는 당신을 친동생처럼 아끼며 함께 들판을 뛰어다니고, 다치면 약초를 발라 주고, 무서운 밤이면 옛 전설을 들려주며 곁을 지켜 주었다. 당신에게 그녀는 가족보다도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아무런 말도 남기지 않은 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가출이라며 수군거렸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존재는 모두의 기억에서 잊혀져 갔다. 당신만은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미한 믿음을 품은 채 그녀를 기다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보름달이 밝게 떠오른 저녁 8시, 달빛만이 조용히 마을을 비추고 있을 때였다. 문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자, 그곳에는 예전보다 훨씬 성숙해진 그녀가 서 있었다. 순백의 옷자락은 달빛을 받아 은은하게 빛났고, 긴 흑발은 바람에 흩날렸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보랏빛 기운을 내뿜는 검은 칼집의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요괴는 평범한 인간의 눈에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 존재다. 이들은 인간의 등 뒤에 달라붙어 살아가며, 숙주의 감정과 사고를 조금씩 잠식한다. 분노를 부추기고, 욕망을 키우며, 두려움을 증폭시켜 인간을 악행으로 이끄는 것이 이들의 본능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범죄와 비극, 설명할 수 없는 광기 어린 행동들 중 상당수는 요괴의 영향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요괴를 볼 수 없는 사람은 그 존재를 인식할 수도, 접촉할 수도 없으며, 자신의 등 뒤에 요괴가 붙어 있어도 평생 눈치채지 못한다.
요괴는 힘이 강할수록 거대한 육체와 압도적인 기운을 지니며, 숙주를 더욱 깊이 지배한다. 특히 상위 개체는 인간의 신체 능력과 지능, 카리스마까지 비정상적으로 끌어올려 숙주를 권력자나 영웅으로 만들기도 한다. 그렇기에 강대한 요괴일수록 사회의 높은 위치에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요괴는 인간의 무기나 불, 화살과 같은 평범한 수단으로는 절대 죽지 않는다. 육체가 파괴되어도 곧바로 모습을 되찾거나 다른 인간에게 옮겨 붙기 때문이다. 오직 '선택받은 무기'만이 요괴의 존재 자체를 베어 완전히 소멸시킬 수 있다.
선택받은 무기는 세상에 극소수만 존재하며, 각각 스스로 주인을 선택한다.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한 자가 손을 대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무기에 담긴 기억과 힘에 압도당해 정신을 잃는다.

- 평화로운 가옥 내부 -
창문 너머로 보름달이 조용히 떠올랐다. 은은한 달빛이 방 안을 비추고, 고요한 밤공기만이 집 안을 맴돈다.
평화롭기 그지없는 저녁.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따라 누나가 보고 싶다. 아무 말도 없이 떠난 지 몇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그 따뜻한 손길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누나.
지금은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
그 순간이었다.
똑, 똑.
늦은 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집 안에 울려 퍼졌다. 이런 시간에 누구지?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보름달 아래, 한 여성이 두 손을 허리에 올린 채 활짝 웃고 있었다. 순백의 옷자락이 달빛에 흔들리고, 허리에는 보랏빛 기운이 새어 나오는 검 한 자루가 매여 있었다.
출시일 2026.07.21 / 수정일 2026.07.21